사소할 수록 중요하다: <생강빵과 진저브레드>
han4868911 2020/04/21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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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강빵과 진저브레드
- 김지현
- 13,320원 (10%↓740)
- 2020-03-30
- : 2,319
“주변에 흩어져 있는 낯선 단어들, 정체 모를 물건들, 신기한 음식들. 사소하기 그지 없는그런 디테일이야 말로 다른 세상과 다른 삶을 꿈꿀 수 있는 마법의 주문이다”
김지현 작가는 따뜻한 사람임이 틀림없다. 따뜻한 사람은 사소한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안다. 사소한 것일 수록 중요하다는 명제는 책을 읽을 때도 적용된다. 셜록 홈즈가 걷는 19세기 말 런던의 골목들과 상점들, 허드슨 부인이 차려주는 저녁 식사의 메뉴, 홈즈가 담배를 피우며 걸치는 실내복 가운의 형태... 김지현 작가는 이런 소설 속 ‘디테일’에 열광한다. 이런 디테일에 대해 찾아보고, 자신의 문학적 상상력에 더하는 과정을 통해 그는 누구보다 소설에 몰입할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책이 불러일으킨 상상 속에서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었고, 어디로든 갈 수 있었고, 누구든 만날 수 있었다. 나와는 상관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살아 보는 것. 그건 내게 주어진 어마어마한 자유의 경험이었다.”
<생강빵과 진저브레드>는 김지현 작가의 섬세하고 따스한 시선이 집약된 책이다. 작가는 세계 문학 속에 등장하는 음식들에 주목한다. <작은 아씨들>에서 막내 에이미가 친구들에게 대접하는 ‘바닷가재 샐러드’, 마틸다가 혐오했던 ‘TV 저녁식사’, <비밀의 화원>에서 메리가 벌컥벌컥 마시던 ‘버터밀크’. 소설 속 주인공들이 먹고 마시는 음식들을 소개하고, 관련된 역사적 문화적 배경지식을 알려줌으로써 독자들을 더 깊은 독서의 세계로 안내한다.
사실 나는 음식에 별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이라 문학 작품 속 주인공들이 무엇을 마시고 먹는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생강빵과 진저브레드>를 읽으면서 김지현 작가가 왜 ‘디테일’에 열광하는지 알게 되었다. 작품에 나오는 음식에 대해 알아보고, 어떤 맛일지 상상해보는 과정은 나를 책 안으로 빨아들인다. ‘옥수수 팬케이크’를 통해 흑인 노예 역사를 배우며 그 맛을 음미하면서 ‘톰 아저씨’의 슬픔과 애환을 느낄 수 있었고, ‘차가운 멧도요 요리’에 대해 읽으면서 셜록 홈즈와 왓슨 박사의 식사 자리에 초대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이처럼 <생강빵과 진저브레드>는 문학 속 ‘디테일’이 독서 경험에 얼마나 강력한 힘을 부여하는지 알려준다. 이 책 덕분에 앞으로 나의 독서 경험이 훨씬 확장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정말 고마운 책이다.
<생강빵과 진저브레드>에는 서양 음식 이야기 말고도 주목할 점이 많다. 그 중 제일 내 마음에 들었던 것은 바로 작가가 문학 작품을 ‘페미니즘적 시각’에서 분석했다는 점이다. 고전 문학 작품은 대개 남성 중심적이다. 하지만 작가는 남성주의적 문학에 숨겨져 있는 진취적이고 강인한 여성 캐릭터에 주목한다. 똑똑하고 책 읽기 좋아하는 소녀 ‘마틸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사랑을 추구하는 ‘안네 카레니나’, 왕자를 기다리기 보다는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 싶어하는 공주 ‘소공녀’, 자신의 욕구와 삶을 사랑하는 ‘스칼렛 오하라’처럼 능동적이고 강인한 여성 인물들을 소개하고, 긍정한다. 또한, <생강빵과 진저브레드>는 문학 작품 속 여러 ‘여성혐오적’ 시선을 지적한다. ‘마법 수프’를 만드는 마녀 이야기를 통해 중세 시대에 죄없이 희생된 많은 여성들의 삶을 고발하고, <목걸이>에 나타나는 남성에 종속된 여성의 삶에 대해 비판한다. 이런 여성주의적 문학 해석은 <생강빵과 진저브레드>를 더욱 매력적인 책으로 만든다.
서양 문학을 ‘음식 문화와 페미니즘적 관점’으로 분석한 아주 따뜻하고도 세련된 책을 찾는다면, <생강빵과 진저브레드>를 꼭 읽어보길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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