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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4868911님의 서재
  • 세상의 봄 - 상
  • 미야베 미유키
  • 13,500원 (10%750)
  • 2020-03-06
  • : 1,422
사실 일본 소설을 좋아하진 않는다. 일본 소설을 읽다보면 여성 캐릭터에 대한 몸매 평가와 구시대적 성적 농담이 포함되어 있어서 읽다가 관둔 적이 많았다. 하지만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은 달랐다. 미야베 미유키는 일본 미스터리 소설의 대모라고 불리는 거장으로, <모방법>, <낙원> 등의 유명한 작품을 쓴 여성 작가다.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에는 일본 남성 작가들에게서 느껴지는 남성주의적 시각이 배제되어있다. 그래서 읽는 내내 마음이 편했다. 특정한 여성 캐릭터의 몸매 평가도, 이상한 성적 상상도, 지금까지 시대가 요구해온 수동적이고 정적인 여성상도 없었다. 나처럼 일본 소설에 대한 막연한 반감을 갖고 있는 독자도 ‘미미 여사’의 작품은 거부감 없이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의 봄>은 미야베 미유키가 작가로 데뷔한 지 30년 만에 쓴 장편소설이다. 봉건 에도 시대를 배경으로 한 미스터리 소설인데, 예전 작품에 비해 좀 더 서정적이고 감성적이다. 이 소설은 아름다운 ‘고코인’이라는 마을에서 ‘기타미’ 번의 6대 번주 ‘시게오키’의 숨겨진 비밀을 알아내기 위한 여정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시게오키’의 숨겨진 과거는 끔찍하면서도 마음 아프다. 하지만 ‘다키’, ‘오리베’, ‘한주로’ 등의 등장 인물은 ‘시게오키’의 숨겨진 과거를 알아가는 과정 속에서 서로 따뜻하게 연대하고, 공감하고, 토의한다. 이 때문에 흉악한 사건을 다루면서도 이 소설이 따뜻한 분위기를 끝까지 잃지 않는다. 소설 속 다정하고 선한 인물들 덕분에 이 책을 읽으면서 인간에 대한 막연한 믿음과 애정이 생긴 것 같다.

`시로타 너는 앞으로 많은 환자를 상대하게 될 테지. 다양한 증상을 듣고 병례를 보게 될 테지. 그때마다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 무엇을 해도 되고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 신중하게 생각하고 잘 살펴보도록 해라. 그리고 있는 힘을 다하고 갖은 수를 써서 신체의 생을 구해라. 그게 바로 의사가 ‘혼’이라는 것의 실체 없는 존재를 접하고 그 빛을 존경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세상의 봄> 상권에서 ‘의사 시로타 노보루’는 자신이 스승으로 부턴 배운 내용을 이렇게 말한다. 내겐 이 문장이 (상)권에서 가장 의미있게 다가왔다. 왜냐하면 나 또한 미래에 의사가 될 사람이기에, 이 문장을 통해 의사로서 가져야 할 태도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다른 사람들이 ‘시게오케’가 사령에 들렸다고 생각할 때, ‘노보루’는 휘둘리지 않고 이성적으로 생각한다. 남들이 주술적인 힘에 매달릴 때, 노보루는 냉철하고 과학적인 판단을 바탕으로 환자의 ‘질환’에 대해 생각한다. 이런 비판적인 사고방식은 의학도로서 가져야 하는 가장 중요한 사고라고 생각한다. 축적된 의학 지식을 바탕으로 질병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치료의 범위를 인지하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일이 바로 의사의 가장 기본적인 덕목이다. 의사 노보루의 의학철학은 이제 본과생이 되어 본격적으로 의학 공부를 시작하는 내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

<세상의 봄> 하권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을 꼽자면, 바로 주인공 ‘다키’의 능동적인 여성상이다. 다키는 일본의 봉건제 사회인 ‘에도 시대’의 인물이지만, 그 당시 일반적인 여자와 다르다. 다키는 이혼녀다. 끊이지 않는 시어머니의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이혼을 하고 친정으로 돌아오지만, 창피해하면서 숨지 않는다. 엇나가버린 과거를 인정하고, 현생과 마주한다. 다키는 친정으로 돌아와서도 농사일을 하면서 꿋꿋하게 아버지를 봉양하면서 산다. 또한 다키는 ‘행동하는’ 여자다. 사랑하는 사람(시게오키)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다키는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다. 일반적인 에도 시대의 여성이라면, 사랑하는 남자 곁에서 상처를 보듬어주고 위로하는 데 그쳤을 것이다. 하지만 다키는 다른 남성 인물들과 함께 물리적인 해결을 위해 밖으로 나가고, 정보를 수집하고, 추리한다. 이런 다키의 적극적이고 강인한 모습에 시게오키는 역으로 다키에게 의지하는 신세가 된다. <세상의 봄>에는 다키 외에도 이런 적극적인 여성 캐릭터가 많다. 그래서 이 소설이 더 마음에 들었다. 미야베 미유키 작가는 남성주의적 시각에서 벗어나, 에도 시대 속 여성의 주도적인 역할에 주목했다. 작가의 이런 열린 관점은 <세상의 봄>을 더 풍요롭고 개성있는 작품으로 만드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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