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랜만에 백수린 소설을 본 듯하다. 예전에 ‘젊은작가상 작품집’에서 단편소설로 처음 알았던 것 같다(2015년 제6회 젊은작가상). 그 뒤에도 두번 더 젊은작가상 받았다. 이젠 그 상은 못 받겠구나. 백수린은 작가가 되고 열해가 지났으니 말이다. 작가가 되고 열해가 넘은 다음에 주는 상은 ‘김승옥문학상’이던가. 몇해 전부터 이 상을 문학동네에서 주게 됐다. 여기 실린 단편에서 김승옥문학상 후보였던 거 있는 것 같은데. 김승옥문학상은 잘 읽지 않았다.
이번에 만난 《봄밤의 모든 것》은 백수린 단편소설집 네번째인가 보다. 몇해 전에는 《여름의 빌라》였는데. 앞으로 가을이나 겨울이 들어간 제목으로 나올지. 그렇게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이 소설집 제목은 ‘봄밤의 모든 것’이지만 봄만 나오지는 않는다. 봄밤은 그때를 가리키는 것보다 상징 같은 걸지도. <아주 환한 날들>은 처음엔 조금 쓸쓸했다. 언제 딸과 사이가 멀어졌는지 모르는 ‘나(옥미)’가 사위가 맡긴 앵무새를 돌보게 되고 사람은 언제든 무언가를 좋아하게 된다는 걸 깨닫는다. 혼자 산다고 쓸쓸한 건 아니지만, ‘나’는 쓸쓸할 틈이 없게 지냈다.
‘나’는 수요일 3시에 하는 수업이 수필 쓰기여서 거기에 다녔는데, 늘 쓸 말이 없었다. ‘나’는 처음엔 앵무새한테 그저 먹이를 주기만 했다. 앵무새가 아프고 병원에 다녀오고는 앵무새 기르는 방법을 찾아보기도 하고, 앵무새와 산책도 한다. 앵무새는 작은 이동장에 넣어서. 앵무새와 산책하면서 ‘나’는 언제 잊어버린지도 모를 일들을 떠올린다. 두달이 지나고 사위는 앵무새를 데리고 간다. ‘나’는 마음이 그리 좋지 않았을 텐데 그런 건 거의 나타내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고 ‘나’는 글을 하나도 쓰지 못했던 공책속에서 앵무새 깃털을 보고는 거기에 ‘앵무새가 가버렸다’고 쓴다.
큰이모 눈이 안 좋아서 어릴 때부터 큰이모 눈이 되고 큰이모가 되고 싶었던 교수가 된 사촌 언니 인주가 그동안 못했던 걸 하게 되는 <빛이 다가올 때>. ‘나’와 인주 언니는 예전에 잠깐 만나고 ‘나’가 서른세살에 미국 뉴욕으로 가 간호사로 일하게 되고, 인주 언니는 연구년으로 뉴욕 한 대학 교환교수로 가게 된다. ‘나’와 인주 언니는 뉴욕에서 만난다. 그때 인주 언니는 누군가를 좋아하기도 했는데, ‘나’는 인주 언니가 그럴 사람이 아니다 여겼다. ‘나’가 나이를 더 먹고 누구한테나 그런 때가 있고 존중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좀 더 일찍 그렇게 생각하지.
백수린은 개와 오래 살고 떠나 보내고 무척 슬퍼하기도 했다. <봄밤의 우리>에 나오는 ‘나(보라)’는 백수린 마음과 비슷한 느낌이 든다. 그것만이 아니구나. 파리에 공부하러 간 것도. ‘나’는 파리에서 만난 나루카와 유타와 친하게 지내면서도 열두살 차이가 나서 친구다 여기지 못했다. 그래도 파리를 떠나고 연락이 끊겼다가 다시 연락하기도 한다. ‘나’가 개와 헤어진 뒤고 유타는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할머니를 돌볼 때.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유타는 ‘나’한테 ‘사랑하는 존재를 잃은 슬픔은 극복이 안 되지. (105쪽)’ 말한다. 유타가 해준 말은 ‘나’를 위로해줬겠다. 그 말은 백수린이 듣고 싶은 말이었을지도.
다음 <흰 눈과 개>는 오래 만나지 않던 아버지와 딸이 여덟해 만에 만나고 화해하는 이야기다. 그게 쉽지는 않았지만. 다리가 세개 있는 개가 기쁜 듯 뛰는 모습을 보고 다른 말은 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호우> <눈이 내리네>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세 편은 대학에서 유적 답사 동아리 친구 세 사람 이야기다. 세 사람이라고 해야 할지 네 사람이라고 해야 할지. 소희, 다혜, 상아 그리고 주미. 주미 이야기는 따로 썼을까. 마지막 소설 <그것은 무엇이었을까?>에 나왔다고 해야겠다. 사고로 아이를 잃은 주미. 그 일만 있었던 건 아니어서 다행이다. 슬픈 일도 기쁜 일도 영원하지 않겠다. 그건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 같은 건가.
소희는 <호우>에서 재개발 되지 않은 주택가에서 본 노인이 죽은 일을 슬프게 여겼다. 그러면서 자신과 아무 상관없다 생각한다. 그건 슬픔을 덜려고 한 생각이 아니었을지. 사람은 모르는 사람의 죽음도 슬퍼한다. 소희가 그런 마음을 언제까지나 갖고 살기를 바란다. <눈이 내리네>에서 다혜는 스무살 대학생이 됐을 때 일을 떠올린다. 다혜는 먼 친척 이모할머니와 살게 됐다. 그때 다혜가 이모할머니한테 글을 알려줬다면 좋았을걸. 그런 것도 나올까 했는데 나오지 않았다. 이모할머니는 나중에 글을 배우고 즐거워했다. 여기 담긴 이야기는 쓸쓸하면서도 따듯하다.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