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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약은 물속에서 더 환한데
  • 이승희
  • 10,800원 (10%600)
  • 2024-07-30
  • : 3,134






 시와 친해지기 어렵군. 난 시를 가끔 만나고 싶어하는데 시는 그런 마음이 거의 없을지도 모르겠어. 내가 시를 좋아해서 만나기보다 의무처럼 만나려고 해설까. 아니 꼭 그렇지만은 않아. 가끔 시가 생각나서 만나는 거야. 시를 만났을 때 마음에 드는 것도 있고 하나도 모르는 것도 있어. 거의 잘 모르던가. 또 이런 말이라니, 시한테 미안하군. 내가 시를 오래 깊이 만나려고 하지 않아서 그런가 봐. 이 말 예전에도 했던 것 같군. 시를 천천히 만나야지 하면서 그러지 못해. 천천히 만난다고 처음에 잘 몰랐던 걸 시간이 흐르고는 알까. 어떤 건 처음에는 뭔가 느끼고 시간이 흐르고 무엇을 느꼈는지 잊어버리기도 해. 사람 기억은 사라지지.


 이번에 만난 시집은 《작약은 물속에서 더 환한데》(이승희)야. 시집 제목이 시속에 나오기도 하고 시 제목이기도 해. 물이 자주 나오더군. 물고기와 버드나무. 버드나무가 물속에 비친 모습일지, 버드나뭇잎을 물고기로 여긴 걸지. 물고기와 버드나무가 나오는 시를 보면 그 모습이 떠오르기도 해. 거기는 물속 같기도 해. 그런 걸 떠올리면서 시를 봐도 괜찮겠지. 여기 담긴 시는 그런 게 많은 듯해. 뭔가 그려지는 거 말이야. 그런 거 잘 그리지는 못하지만.




잠의 뒤꼍으로


꽃이 피듯 배가 밀려왔다


나의 등을 가만히 밀어왔다


죽은 이의 편지 같이서


슬프고 따뜻해서


그렇게 배에 올랐다


배는 공중에 떠서


시작과 끝이 없는 이야기처럼 흘러갔다


눈이 내리듯 천천히 흘렀다


가는 것이 꼭 돌아오는 것 같았다


-<밤배>, 40쪽




 제목이 ‘밤배’인 시 두편 실렸어. 꿈속에 나타난 배일까. ‘잠의 뒤꼍’이라니. 배가 공중에 뜨기도 하는군. 정말 꿈속 같네. 꿈에 나타난 배를 생각하며 시를 읽어봐도 괜찮겠어. 난 꿈속에 배가 밀려온 적 없지만. 배가 나오려면 자주 배를 타야 할지도. 버스 자주 안 타도 가끔 버스 타는 꿈 꿨군. 현실과 꿈은 이어져 있기도 동떨어져 있기도 하겠어.




우리집에 놀러오세요

여긴 날마다 여름

발을 담그세요

그럼 발을 발견할 수 있어요

슬픔은 나누는 게 아니구요

혼자 먹는 여름 같아요

그냥 두어도 잘 자라죠

여긴 공중이 없어요

창문도 없구요

보이는데 갈 수 없는 곳만 날마다 선명해져요

그런 곳만 만들어요

크게 라디오를 켜요

내 것이 하나도 없는 날씨는 좋아요

피가 묽어지면

나는 어떤 연결된 것들과 잠시 멀어져요

기다려보기로 해요

기다림 속에서 기다림을 꺼내요


그러나 아무도 오지 않죠

괜찮아요

아무도 없는 저녁을 마음껏 달려볼 수 있으니

식물과 식물 사이에서

난 쫓기기도 하죠

날 사냥하는 게 무언지도 모른 채

신나서 달아나요

숨이 차서 돌아보면 아무도 없어요

그렇게 하루가 가곤 하죠

모르겠어요

나의 일기는 누군가 모르는 곳에서

적고 있을 거예요

밤은 뱀처럼 온다고

방마다 들어가 운다고


나는 그런 방이 많다고


-<즐거운 우리집>, 64쪽~65쪽




 앞에 시는 제목이 <즐거운 우리집>이어서 옮겼어. 즐거운 우리집 같은 느낌은 덜 드는군. 슬픔도 있고 무서운 느낌도 들어. 쫓기는 건 꿈인가. 누군가 ‘우리집에 놀러오세요’ 했는데, 아무도 안 온 것 같군. 즐거운 우리집은 사람이 아닌 뭔가 다른 것의 집일까.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방이 많은 건 뭘지. 식물일까.


 이번 이승희 시인 시집에 담긴 시에는 식물이 많이 나와. 나무와 꽃이. 작약도 꽃이지. 제목에 여름이 들어간 시를 보면 여름이 떠오르기도 했어(지금이 여름이군). 이건 단순한 건가. 잎이 무성한 나무. 시인은 나무를 많이 보고 식물을 기를까. 그런 느낌이 조금 드는데 어떨지. 시인이 시로 많이 쓰는 건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일까. 상상도 있을 거야. 난 내가 경험하지 않은 것도 써. 실제 안 보고 눈을 감고 뭔가를 떠올리기도 해. 그건 본 적 있는 것일지도. 내가 떠올리는 건 그렇게 멋있지 않군. 상상력이 얼마 없어. 시를 봐도 난 시인처럼 못 쓰겠어.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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