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랜만에 온다 리쿠 소설을 만났습니다. 이 소설이 나오기 전에 나온 소설도 있겠지요. 온다 리쿠 소설 다는 아니고 몇 권 만났는데, 저와 맞는 것도 있고 잘 안 맞는 것도 있습니다. 신기한 일이군요. 작가 이름만 보고 보는 소설도 있지만, 이름을 알아도 보고 싶다 생각하지 않기도 하네요. 작가에 따라 맞는 사람도 있고, 한 작가여도 괜찮은 것과 괜찮지 않은 것도 있군요. 안 좋다는 게 아니고 제 취향과 다르다는 거네요. 온다 리쿠는 괜찮은 것도 있고 뭐가 뭔지 모를 것도 있습니다(제가 모르는 거겠지요). 이건 온다 리쿠가 여러 가지를 쓴다는 거네요.
인터넷 책방 책소개에서 본 말일지 잘 모르겠지만, 이번에 만난 《스프링》은 예술 삼부작에서 하나다 한 것 같아요. 첫번째는 《초콜릿 코스모스》인가 봅니다. 이 소설 본 것 같은데 하나도 생각나지 않습니다. 그저 글자만 본 건지. 두번째인 《꿀벌과 천둥》은 재미있게 만났습니다. 그 소설은 좋았습니다. 그건 나오키상과 일본 서점대상을 받았군요. 《스프링》도 ‘꿀벌과 천둥’과 비슷할까 했습니다. 같은 작가라고 해서 예전과 비슷한 걸 바라면 안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피아노, 클래식 음악 잘 모르지만, 그걸 소설이나 영상으로 조금 봤군요. 춤은 더 모릅니다.
여기에는 무용수면서 안무가가 된 요로즈 하루가 나옵니다. 이름 뜻은 만개의 봄이랍니다. 책 제목인 ‘스프링’에도 하루 이름이 들어갔네요. 무용수는 ‘수’고 안무가는 ‘가’네요. 요로즈 하루를 여러 사람이 말해요. 처음에는 워크숍에서 만나고 함께 발레 학교에 다닌 후카쓰 준이 말하고 두번째는 정서교육 담당이었다고 하는 외삼촌 미노루가 말해요. 다음에는 어릴 때 하루와 발레를 했지만, 작곡을 하게 되는 나나세, 마지막에는 하루 자신이 말합니다. 다른 사람이 이야기하는 것뿐 아니라 하루가 말하는 것도 나와서 괜찮네요. 후카쓰 준이나 미노루가 말하는 하루는 어쩐지 땅에 발을 딛지 않은 것 같은 모습이기도 했습니다. 하루가 말하는 것도 아주 다르지 않았을지도. 다 이해하기는 어렵고 그런가 보다 했어요.
요로즈 하루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잘 아는 건 아닌데 발레는 타고 나야 할 듯합니다. 몸 자체가. 팔 다리가 길어야죠. 하루가 처음부터 발레를 한 건 아니고 우연히 길에서 발레를 가르치는 선생을 만나서 발레를 알게 됐어요. 그런 우연과 같은 기적은 일어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소설이기에 그렇다기보다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루는 어릴 때부터 남달랐습니다. 어린이 같지 않게 모든 걸 자세하게 보려 했어요. 세상을 잘 본 건가. 그런 게 발레하는 것뿐 아니라 안무가가 되는 데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싶어요. 책과 음악은 외갓집, 미노루 외삼촌 덕분에 알았네요. 그런 친척이 있다니.
사람은 어떤 환경에서 자라느냐에 따라 다른 건 당연하지요. 하루는 선생님이나 스승도 잘 만났습니다. 선생님은 두번째 부모다 여길 정도였으니. 선생님과 스승이다 한 건 하루예요. 스승은 최고 무용수에서 안무가가 된 사람이었어요. 하루와 비슷하지요. 무용수인 것도 대단하겠지만, 자신이 안무를 짜는 것도 쉽지 않겠습니다. 하루가 만든 안무에 음악을 만들어주는 건 나나세예요. 나나세는 하루가 춤을 추면 음악이 들린다고 했어요. 반대로 하루는 나나세 음악을 들으면 춤이 생각난다더군요. 그런 건 어떤 걸지. 저는 잘 모르는 거군요. 나나세도 하루와는 다른 천재인 거네요.
춤은 잘 모르지만, 하루는 자유롭게 춤추고 자유로운 춤을 만들 듯합니다. 그런 걸 안 것만으로도 이 책을 만난 보람은 있었습니다. 세상 어딘가에 정말 하루 같은 춤꾼이 있을지도. 무용수나 안무가보다 춤꾼이 더 마음에 듭니다. 하루는 그런 말 좋아할지.
희선
☆―
난 말이야, 지금까지 줄곧 궁금했어. 어째서 우리는 발레를 보는 걸까. 왜 발레를 보고 싶어하는 걸까. 그러다 <어새슨>을 보면서 ‘아아, 나 대신 춤추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그건 내가 발레를 했기 때문이 아니야. 무용수가 아니라도, 다른 일을 하거나 다른 환경속에 있는 사람이라도, 무대 위 무용수들은 그 모든 관객을 대신해 춤추는 거야. 본래 무대 예술이란 게 다 그럴지도 모르지. 연기자나 음악가, 무용수는 무대 위에서 관객을 대신해 살아. 모두가 무대 위에서 다시 사는 자신을 봐. 무대 위 예술가와 함께 다시 사는 거야.
<어새슨>을 보면서 핫산과 바네사를 비롯한 등장인물 모두가 분명 나를 대신해 살고, 나를 대신해 춤춘다는 느낌이 들었어. 내가 하지 못했던 말과 하고 싶었던 말을 대신했어. 그런 면에서 나는 틀림없이 무대 위에서 그들과 함께 춤을 췄지. (342쪽~34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