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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활자 잔혹극
  • 루스 렌들
  • 15,120원 (10%840)
  • 2024-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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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생각나지 않지만, 난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글을 조금 배운 듯하다. 그렇다고 잘 익힌 건 아닌 것 같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받아쓰기 틀리기도 한 걸 보면 말이다. 그때는 그게 참 어려웠던 것 같다. 그런 일은 누구한테나 일어나기도 하겠지. 어릴 때부터 글을 쉽게 익히고 한자에 영어까지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늘 그랬던 건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한국은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부모가 공부를 시키기도 한다. 모든 부모가 그런 건 아닐지도 모르고, 옛날에는 그러지 않았겠지. 아니 여자아이는 글공부 안 시켜도 남자아이는 시켰겠다. 그것도 거의 양반집이나 잘사는 집만 그랬겠다. 다른 나라도 아주 다르지 않을 것 같기도 한데 어떨지.


 이 책 《활자 잔혹극》(루스 렌들)에서는 유니스 파치먼이 커버데일 네 식구를 죽이고, 그건 유니스가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해서였다고 처음에 말한다. 살인사건은 일어나고 범인과 동기도 다 밝혀졌다. 예전부터 범인을 밝히고 그 일이 일어나기까지 이야기가 나오는 게 있었구나. 이런 구성은 지금도 나온다. 읽고 쓰지 못하는 것 때문에 사람을 죽이기도 할까(이 소설은 1994년에 나왔다). 이런 생각은 쉽게 하기 어렵다. 난 이 이야기 다른 것도 생각했다. 모두가 잘 지낼 수도 있었다는 걸로. 그런 이야기가 아주 없지는 않겠다. 유니스가 다른 사람한테 솔직하게 자기 일을 털어놓고 누군가와 잘 사귀기는 어렵기는 하다. 그게 글을 읽고 쓰지 못해서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겠다. 읽고 쓰는 게 어려운 건 아니지만, 그걸 못해서 느끼는 굴욕감은 많은 사람이 모를 거다. 그러니 멜린다가 유니스 일을 알았을 때 자신이 알려주겠다 말했겠지.


 멜린다는 커버데일 집안 막내딸이다. 조지와 재클린은 재혼한 사이고 조지는 세 아이가 있고 재클린은 아들이 하나 있었다. 집을 떠나 사는 조지 아이 둘은 죽지 않아서 다행이구나. 멜린다가 유니스 비밀을 알았을 때 그동안 참 힘들었겠다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겠다고 했다면 좋았을 텐데. 그렇게 말했다 해도 유니스는 화를 내고 멜린다를 협박했을지도 모르겠지만. 멜린다가 조와 재클린한테 잘 말했다면 좀 나았을까. 그것보다 멜린다가 유니스 이야기를 했을 때 조지와 재클린이 좀 더 깊이 생각했다면 좋았을걸. 이런 생각은 다 쓸데없는 거다. 아니 꼭 그렇지는 않다. 이 이야기를 보고 난 뒤여서, 내가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섣불리 그걸 알려주겠다 말하지 않겠다. 어쩌면 알고도 모르는 척할지도.


 글을 알면 새로운 세상이 보이지 않는가. 이 느낌 다 아는 건 아닌 듯하다. 이 소설이 그런 이야기가 될 수도 있었는데. 유니스가 어렸을 때 좋은 사람을 만났다면 말이다. 아쉽게도 유니스는 그런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학교에는 드문드문 다녔지만 선생님이 제대로 보지 않고 전쟁이 일어나고 학교에 다니지 못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유니스가 글을 읽고 쓰지 못한다는 걸 알았지만, 글을 알려주지는 않았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유니스한테 읽고 쓰는 걸 가르쳤다면 좋았을 텐데. 어머니는 아파서 죽고 아버지가 아프자 유니스가 돌보다가 죽이고 만다. 유니스는 우연히 다른 사람 비밀을 알게 되고 그걸로 협박하고 돈을 뜯어냈다. 유니스는 다른 사람한테 공감하지 못했다. 그건 글을 읽고 쓰지 못하면 일어나는 일이기도 할까. 다른 일도 영향을 미쳤겠지. 유니스는 사이코패스 기질도 있었던 거 아닐까. 예전엔 작가가 그런 생각 못했겠지만, 그런 느낌도 든다. 유니스가 남한테서 돈을 뜯어내기는 해도 아주 똑똑하지는 않았다. 사이코패스와는 조금 거리가 있을 것 같다.


 누군가 유니스한테 글을 알면 좋다는 걸 알려줬다면 좋았겠지만, 그런 사람은 없었다. 유니스는 그런 말 들었다 해도 관심 갖지 않았으려나. 호기심이 있었다면 글을 익혔겠지. 글을 익히지 않고 그걸 공포로 여기다니. 그렇게 무섭게 여길 바에는 글을 배울 텐데. 유니스는 바라는 게 그리 많지 않았다. 텔레비전과 초콜릿 바가 있다면 괜찮았다. 가정부로 일하러 간 커버데일 집에서는 자신이 글을 읽고 쓰지 못하는 걸 들키면 안 된다 여긴 듯하다. 왜 그랬을까. 그 집에는 책이 많고 그 집 사람은 책 읽기를 즐겼다. 재클린은 유니스한테 말로 하지 않고 쪽지를 남겼다. 유니스는 그것을 스트레스로 여겼을 것 같다. 글을 모르면 상상력도 덜할까. 나도 잘 모르겠다.


 사람도 잘 만나야 한다. 유니스는 커버데일 집 로필드 홀에서 일하게 되고 식구들이 모두 휴가를 떠나자 혼자 편하게 지낸다. 하필 그때 텔레비전이 고장나고 유니스는 만나지 않아야 할 사람을 만났다. 조앤 스미스는 부모한테 사랑 받았는데 왜 이상해진 걸까. 시간이 갈수록 조앤은 미치고 유니스는 그런 것에 별로 마음 쓰지 않았다. 유니스가 글을 읽고 책을 봤다면 사람을 알아봤을 텐데. 아니 나도 모르겠다. 글을 읽고 쓰지 못하는 게 모든 일이 일어나게 한 건지. 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밖에 못하겠다.




희선





☆―


 그는 활자로 도배된 세상이 끔찍했다. 활자를 자신한테 닥친 위협이다 생각했다. 활자는 거리를 두고 피해야 할 대상이었고, 그에게 활자를 보여주려는 사람 또한 마찬가지였다. 활자를 피하려는 버릇은 몸에 깊이 배어 있었다. 더 이상 생각하고 하는 행동이 아니었다. 따듯한 마음이나, 남을 생각하는 애정, 사람다운 열정이 솟아나는 샘은 이런 걸로 오래전에 말라 버렸다. 이제는 고립되어 지내는 일이 자연스러웠고, 이러한 자신의 태도가 인쇄물이나 책, 손으로 쓴 글자에서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행위에서 비롯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유니스가 문맹이라는 사실은 유니스의 동정심을 앗아갔고 상상력을 위축시켰다. 심리학자들이 애정이라고 하는, 남한테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능력은 그의 기질 안에 설 자리가 없었다.  (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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