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법칙은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다. 끝이다 해서 다 끝은 아니다로 이어지기도 하는구나. 이건 인류가 오랫동안 이어져 오면서 생각한 걸지도. 그냥 끝이면 아쉽지 않나. 자신이 영원히 살지 못한다 해도 인류는 다른 사람,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는 걸 안다. 이건 인류만 그런 건 아니다. 나무 동물 목숨 있는 건 다 그렇다. 자연은 있는 그대로 살아가도 사람은 살아가는 뜻을 찾으려고 하는구나. 삶의 보람이 있어야 한다 하고. 사람이 사는 데도 큰 뜻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저 지구에 나타나는 작은 생물로 살다가 죽는다. 죽음이 슬픈 건 더는 상대를 만나지 못하고 이야기하지 못해서겠지. 그런 슬픔은 동물도 느낀다고 생각한다.
조해진 소설 《겨울을 지나가다》 는 밤이 가장 긴 <동지>부터 아주 추운 <대한>을 지나 <우수>로 이어진다. 우수는 비가 많이 오는 절기던가. 우수는 잘 모르는구나. 비가 오니 눈이 녹고 봄이 가까이 왔겠다. 부모가 죽는 일은 슬픈 일이다. 그걸 받아들이는 시간도 있어야겠지. 이 소설 ‘겨울을 지나가다’에는 그런 시간이 담겼다. 그렇다고 정연이 가진 슬픔이 다 사라진 건 아니다. 엄마가 세상을 떠났다는 슬픔은 언제나 마음속에 있고, 시간이 갈수록 조금 희미해지겠지. 동생인 미연도 다르지 않겠다.
엄마가 죽은 다음 장례식장에서 누군가 한 ‘딸이 있어야 한다는 말’ 나도 싫다. 딸이든 아들이든 상관없지 않나. 자식이 없으면 어떤가. 아들이 있어야 한다는 말할 때도 있겠다. 부모가 자식을 낳는 게 자식 덕을 보려는 건 아니지 않는가. 예전에 나도 비슷하게 생각했을지도. 지금은 다르다. 아픈 부모를 꼭 자식이 돌봐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간병을 다른 사람한테 맡기거나 요양시설에 들어가는 것도 돈이 있어야 하는구나. 돈이 있는 사람은 돈으로 하면 된다. 아픈 부모를 돌보다 미워하는 것보다 낫지 않나. 결혼 안 하고 혼자여도 괜찮다(내가 그렇구나). 사람이 꼭 결혼하고 자식도 낳아야 할까. 어쩌다 보니 이런 말로 흘렀구나. 자식은 아들이든 딸이든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딸이라고 해서 다 부모한테 말을 잘 하는 것도 아니다. 아들인데 부모한테 말 잘 하는 사람도 있다. 왜 사람들은 아들은 어떻고 딸은 어떻다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사람은 다 다른데 말이다.
정연은 하던 일을 잠시 쉬고 엄마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함께 했다. 바로 일하러 돌아가지 않고, 정연은 J읍에 머물고 엄마 옷을 입고 엄마 화장품을 썼다. 이건 애도겠다. 정연은 엄마가 하던 칼국수 식당에서 칼국수를 만들어 먹기도 하고 엄마와 함께 살던 개 정미와 산책하기도 했다. 정미는 식당 이름이기도 하다. 정연과 미연 이름에서 가져온 거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도 괜찮겠지. 어느 날 가게 문에 정미 집이 다 됐다는 쪽지가 붙어 있었다. 정연은 엄마 휴대전화기로 찾아보다가 지도 어플로 목공소를 찾게 된다. 다행하게도 거기가 맞았다. 목공소 이름은 ‘숨’이었다. 목공소를 하는 영준은 예전엔 주택공사에서 일을 했다. 여러 가지 일을 했는데 재개발 되는 곳에 가서는 거기 사는 사람을 내보내는 일도 했던가 보다. 거칠게 나가라고 하지는 않았겠지. 세상에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도 있구나.
옛날에 영준이 만난 다연이는 어쩐지 인터넷 기사에서 한번쯤 본 요즘 청년 같은 느낌이 들었다. 더는 갈 곳이 없어 벼랑 끝에 몰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그런 일은 지금도 일어날지도 모르겠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좋을 텐데. 자신을 구할 사람은 자신이기도 하지만, 누군가한테 손을 내미는 것도 자신을 구하려는 게 아닐까. 나도 잘 못할 텐데. 영준은 자신 때문에 다연이가 죽은 건 아닐까 하면서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 말 다른 사람한테는 하지 못했겠지. 정연이 그 말을 들어주었다. 엄마와 만난 인연으로 그런 인연이 생기기도 하는구나. 다연이가 살았던 아파트는 꽤 나중에 허물게 됐다. 지금 세상은 다연이 같은 청년이 살아가기에 삭막할까. 그럴지도.
다연이가 살던 아파트에 정연과 영준이 함께 간다. 정연은 자신의 엄마와 다연이가 저세상에서 만났기를 바란다. 거기에서 엄마가 다연이 엄마가 되어도 괜찮다고. 하지만 아주 멀리 가지 않기를 바랐다. 다연이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다 해야겠지. 겨울을 지나갈 때 혼자가 아니면 덜 추울지도. 아니 혼자여도 아주 혼자는 아닐 것 같다.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