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전체보기

알라딘

서재
장바구니
  • D의 살인사건, 실로 무서운 것은
  • 우타노 쇼고
  • 2,970원 (10%160)
  • 2019-10-25
  • : 3,577

 

 

 처음에 책 제목을 보고 D의 살인사건 다음에 나오는 말 ‘실로 무서운 것’이 무얼까 했다. 우타노 쇼고가 처음에 쓴 글을 보고 여기 담긴 소설이 에도가와 란포 소설을 지금 시대에 맞게 썼다는 걸 알았다. 우타노 쇼고는 어릴 때부터 에도가와 란포 소설을 봤다고 한다. 에도가와 란포가 추리소설을 썼을 때 다른 소설가도 있었겠지만. 난 에도가와 란포와 같은 때 추리소설을 쓴 사람을 거의 모른다. 에도가와 란포가 요코미조 세이시한테 추리소설을 써 보라 말했다는 건 안다. 두 사람이 친하게 지냈을 거다. 에도가와 란포 소설보다 요코미조 세이시 소설을 조금 더 많이 본 것 같다. 에도가와 란포는 거의 이름만 알고 2019년에 단편 중편이 담긴 걸 만났다. 거기에서 본 건 여기에는 없다. <천장 위 산책자> 이야기는 <음울한 짐승의 환희>에 나오는구나.

 

 내가 에도가와 란포 소설은 별로 못 만났지만, 에도가와 란포한테 영향 받은 소설가 책은 많이 만나지 않았을까 싶다(추리, 미스터리 많이 본 사람보다 여전히 적지만). 많은 일본 소설가가 에도가와 란포한테 영향 받았겠지. 그리고 마쓰모토 세이초도. 란포와 세이초 비슷한 점 있지 않을까. 어딘가에 다니기 좋아하는 거. 란포는 글이 잘 쓰이지 않으면 여기저기 다녔다고 한다. 에도가와 란포를 많이 생각나게 하는 건 오래된 만화 <명탐정 코난>이다. 에도가와 코난은 에도가와 란포와 코난 도일 이름을 합친 거다. 코난인 쿠도 신이치는 홈즈를 더 좋아하던가. 란포 소설도 읽었겠지. 코난은 이것저것 아는 거 많다. 란포가 코난을 알았다면 참 기뻐했을 것 같다. 코난 이야기는 전에도 했던가.

 

 예전에 다른 책에서 <인간 의자>와 <오시에와 여행하는 남자>(오시에 : 꽃, 새, 인물 모양 판지를 여러 빛깔 헝겊으로 감싸 솜으로 높낮이 효과를 주어 판자에 붙이는 전통 공예품) 이야기는 조금 봤다. 우타노 쇼고는 <인간? 의자!>와 <스마트폰과 여행하는 남자>로 썼다. 사람이 의자에 들어가는 건 <검은 도마뱀>에도 나오기는 한다. ‘인간 의자’에 나오는 건 다른 의자구나. 사람이 의자(1인용 소파)에 들어가게 의자를 개조해서 그 안에 들어가는 건데, 인간? 의자!에도 그런 게 나올까 하면서 봤다. 여기에서는 말뿐이었지만 이상한 일이 일어나서 그 말을 들은 사람은 그걸 믿고 큰일을 저지르고 만다. 책을 보면서 내가 생각한 말이 나와서 조금 신기했다. 그건 뭐라 해야 할까. 누구나 책을 보면서 그게 아닐까 생각하기도 한다. 복수하려고 오랜 시간을 들이다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번째 이야기 <스마트폰과 여행하는 이야기>는 조금 상상이 되지 않나. 그렇기는 해도 지금은 많은 사람이 스마트폰을 들고 다닌다. 여기에서는 그걸 어떻게 나타냈을까. 어떤 복제 인공지능이 스마트폰 화면에 보였다. 인공지능 자체가 스마트폰 안에 든 건 아닌 듯했다. 첨단과학이 나오면서 환상도 나온다. 이걸 보면서 나도 스마트폰과 다니는 사람 이야기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생각밖에 못했다. 그때 바로 썼다면 좋았을지. 이걸 보다보니 <나츠메 우인장>에서 본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건 <오시에와 여행하는 남자>에 영향 받았을까. 나츠메 우인장에서는 요괴가 그림을 가지고 여기저기 다닌다. 그 요괴는 자신이 만났던 사람이 그림속에 들어갔다 여겼다. 그 사람이 정말 그림속에 들어갔는지 그저 그 사람을 그린 그림일 뿐인지 그건 모른다. 난 이런 쪽이 더 좋은데. 스마트폰에도 누군가의 영혼이 들어갔으려나 했다. 우타노 쇼고는 인공지능을 썼구나.

 

 책 제목이기도 한 <D의 살인, 실로 무서운 것은>에는 무서운 초등학생이 나온다. 무섭다고 하다니. 그만큼 그 아이가 상처받아서 친구라 여긴 사람(어른)을 용서하지 않겠다고 했겠지. 그 사람은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그러지 않았다면 좋았을 텐데. 이렇게밖에 말하지 않다니. 어쩐지 요즘 어린이는 똑똑하고 무섭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런 아이만 있지 않겠지. 그래야 할 텐데. <‘오세이 등장’을 읽는 남자>는 이상 소설 <날개>가 생각나게 했다. 아니 이건 에도가와 란포 소설 <오세이 등장>이 그랬다. 폐병 걸린 남편과 다른 사람을 만나는 아내라는 게. 우타노 쇼고가 쓴 소설에서는 나이 차이 많이 나는 남편과 아내가 나오고, 남편은 치매를 앓는 아내 아버지를 돌봤다. 그렇다고 좋은 남편이냐 하면 아니다. 남편인 타로는 장인이 죽기를 바라는 생각을 하고 자신이 먼저 의류함에 들어간다. 그렇게 들어가고 뚜껑을 닫으려 할 때, 난 마음속으로 타로가 저기에 들어가면 갇히겠구나 했다. 실제 그렇게 된다. 그래도 한번 살 기회가 있었는데 놓치고 만다.

 

 소설이 시작하기 전에 짧게 에도가와 란포 소설을 소개한다. 그것과 비슷한 것도 있고 조금 달라 보이는 것도 있다. <붉은 방은 어떻게 바뀌었는가?>는 연극으로 많은 사람을 속이는데 비극으로 끝난다. 본래는 아무도 죽지 않았는데. <음울한 짐승의 환희>는 망상을 즐기던 사람이 그걸 깨어버려셔 안 좋은 일이 일어난다. <비인간스런 사랑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암호풀이구나. 그걸 하는 사람은 즐거웠겠지만 그건 듣는 사람은 그저 그래 보였다. 아니 그래도 잠시 좋은 일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생각했구나. 우타노 쇼고가 쓴 소설을 보니 에도가와 란포 소설은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그 소설을 만날지.

 

 

 

희선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