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이긴 한데 휴가는 아니다. 한 명은 출근하고, 한 명은 이런저런 일정이 있고, 한 명은 비행기 타고 KTX 타고 친구들이랑 여기저기 놀러 다닌다. 계획 짜서 어디 가는 스타일도 아니고, 많이 덥기도 해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은데 그것도 나쁘지는 않다. 더운 날씨를 피하고 일상에서 탈피하는 게 휴가라면, 일단 집 밖이 더워서 밖으로 나갈 수 없고, 출근하지 않고 있으며(아싸!), 챙겨야 할 어린아이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 그러고 보니 휴가가 맞다.
방학이고 휴가다.
인스타 계정은 있는데 비공개 상태다. 사진 보정 목적으로 앱을 깔았는데, 인스타 하는 시간이 점점 늘었나고 있다. 인공지능 책 읽을 때 많이 나오는 '경사하강'에 의한 알고리즘 강화로 인해, 나는 점점 인스타의 늪에 빠져만 드는데... 자주 보이는 피드는 다음과 같다.
미니멀리즘 / 독서모임 / 최민희 의원 / 바스크 치즈케이크/ 영어원서 / 만 원으로 행복한 밥상 그리고...
다이어리 / 노트 / 노트 / 노트 / 몰스킨/ 펜 / 다이어리 / 노트 / 펜 / 다이어리 / 다이어리 / 노트
친구한테 이야기했다가 엄청나게 혼났다. 반백년이 가까워오는 이때에, 인스타 많이 했다고 혼났다. 뭐든 손에 잡히지가 않아서 그래도 손에 잡히는 걸 잡았는데, 이게 이렇게 혼날 일인가.
『신성한 제인 에어 북클럽』을 다시 읽었다. 3년 전에 읽었는데, 처음 읽는 것처럼 느껴졌다. 읽을 때 좋았던 책들을 골라서 다시 읽어봐야겠구나 생각했다. 이를테면, 이런 에피소드는 가슴 아픈 사연이라 잊어버릴 수 없었을 텐데, 처음 읽는 것 같아 한 번 더 놀랐다.
저자 바네사 졸탄의 양가 할아버지, 할머니는 모두 아우슈비츠 생존자다. 그녀의 친할머니 안뉴는 헝가리의 다른 유대인들과 함께 추방당해 수용소로 끌려갔는데 그곳에서 잠시 떨어졌던 자신의 아버지를 보게 된다. 아버지(저자의 증조할아버지)는 기차 여행과 굶주림으로 정신이 없으셨는지 줄을 이탈하고 말았다. 안뉴는 아버지가 총에 맞을까 봐 제대로 줄을 서도록 도와드렸다. 아버지를 지켜드리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나중에서야 자신이 아버지가 가스실로 들어가는 줄을 제대로 서도록 도와드렸음을 알게 되었다. 저자는 가스실로 들어가기 전, 증조부들과 친척들이 읊조렸을 쉐마 기도 소리를 상상한다. 그녀의 삶을 현재까지도 지배하는 아우슈비츠의 그림자 속에서, 그녀는 삶에 대해 생각한다. 기도에 대해, 친절에 대해, 운명에 대해. 그리고 희망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이 부분은 전에 페이퍼로도 썼던 거 같은데, 이번에도 가슴에 콕 와닿았다.
제인은 자신이 얼마나 로체스터를 사랑하고 애타게 기다리는지를 일기장에 적지 않는다. 유모인 소피에게도 자신이 로체스터와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을 털어놓지 않고, 로체스터에게 그리움의 편지를 보내지도 않는다. 그가 한 일은 애써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다. 그는 상상력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 아름다운 모습으로 잉그램 양의 얼굴을 그리고 또 최대한 볼품없고 못생기게 자신의 얼굴을 그리면서 자신의 가슴을 짓이기고 있었다. (『신성한 제인 에어 북클럽』, 144쪽)
말하면서 이겨낼 수 있는 고통이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 방법이 효과적일 수 있다. 효과가 있다는 것은, 말할 수 없는 그 문제를 극복하거나 그 고통을 경감시키는데 말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말하지 않음으로 고통에 맞서기도 한다. 제인이 그랬고. 그리고 『랩 걸』의 저자 호프 자런이 성장했던 북유럽의 문화가 그랬던 것 같다.

북유럽 가족 구성원들 사이의 멀고도 먼 감정적인 거리는 어려서 형성되기 시작해서 날마다 강화된다. 누구에게도 상대방에 대해 아무것도 물어볼 수 없는 문화에서 자라는 것,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 ‘어떻게 지내니?’하는 일상적인 인사도 아주 개인적인 질문이어서 굳이 대답하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간주되는 문화 말이다. 나 자신을 괴롭히는 문제를 무슨 일이 있어도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는 훈련을 받는 동시에 다른 사람의 문제는 그 사람이 먼저 말을 꺼낼 때까지 절대 입에 올리지 않고 기다려야 한다고 배우는 문화 말이다. 완전히 고립된 공간에서 식량을 비롯한 자원이 점점 고갈되어가는 길고도 어두운 겨울을 지나면서, 불필요하게 서로를 죽이는 일을 피하기 위해 침묵을 지켜야 했던 옛 바이킹 생존 전략의 흔적인지도 모른다. (『랩 걸』, 24쪽)
나는 혼란스러운 그 지점의 중심, 태풍의 눈을 통과하고 있을 때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는 방식을 선택한다. 내 안에 답을 찾을 때까지. 나 스스로 그에 대한 답을 얻을 때까지, 그 문제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고민의 시간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할 수 있다. 그 문제를 입 밖으로 꺼냈을 때,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을 내 귀로 들었을 때, 비로소 알게 된다.
나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썼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이미 그 답을.
인스타를 이기겠다는 각오로, 사실은 그런 각오 없이 엘레나 페란테 이북을 4권 50년 대여했다. 지금 내 나이에서 50 더해야 하는 거니깐. 2026년 현재 기대수명 84세. 50년으로 충분하다. 오래오래 읽을 수 있겠다. 페란테 책은 영어로 4권 가지고 있고, 심지어 1권은 2권이나 있다. 저자가 이탈리아 사람이고, 이탈리아어로 썼는데, 나는 왜 영어책을 산 건지 도대체 알 수 없지만. 아무튼 한글로 한 번 읽고, 영어로 한 번 읽었다. 이제는 읽고 싶으면 언제든지 핸드폰에서 읽을 수 있다. 릴스폭격 인스타는 물러가라! 물러가라!
최고의 휴가템 잭 리처, 『방문자』를 읽었는데, 중간중간 의문 나는 지점이 많다. 잭 리처 전문가들과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고 싶다. 나는 잭 리처가 좋고, 그리고 싫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