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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세계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그 인식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통념, 그리고 사회 분위기를 결정하는 문화가 얼마나 빠른 시간 안에 변동되는지를 잊어버릴 때가 있다. 200년 전에도 인간은 인간이었고, 1만 년 전에 인간이 느꼈던 희로애락, 애증과 분노, 기쁨과 환희는 지금 우리의 그것과 비슷하.... 다기 보다는 거의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여성을 하나의 집단으로, 남성과 다른 하나의 동일체로 규정할 뿐만 아니라, 그들 집단 전체가 공유하는 특질이 있는 것처럼 여기는 태도, 그런 인식에 의해 여성 집단을 강제했던 '여성 혐오 문화'의 시작을 거다 러너는 농경의 시작 이전으로 보고 있다. 가부장제의 역사를 논함에 있어서 나는 그 부분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한 여성이 한 남성의 '소유물'로 여겨지면서, 여성 집단 전체가 남성 집단 전체에게 포획되어가는 과정 말이다. 농경, 즉 정착 생활의 시작과 더불어 여성 지위의 주요한 변곡점은 자본주의와 관련이 있다. 이 책 『임금의 가부장제』는 자본주의의 발전이 여성을 어떻게 무력화시켰는지에 대해 서술한다. 『가부장제의 창조』에서 거다 러너가 상류층 여성들의 피지배화 과정을 추적했다면, 실비아 페데리치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여성들이 피지배화 과정을 파헤친다.











『제2의 성』에서 시몬 드 보부아르는 '남편이 소유한 재산이 막대할수록 아내는 그만큼 더 가혹하게 예속된다'(134쪽)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의 현실판이 『파크 애비뉴의 영장류』이다. 시간과 돈이 남아도는 고학력자 여성들이 직업 대신 완벽한 몸매 가꾸기와 명품에 집착하고, 자녀들에게 최상의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올인하는 모습(24쪽)이 그려진다. 상류층 여성들이 먼저 포박되었다. 그다음은 프롤레타리아 여성 차례.

마르크스가 노동력의 세대 재생산 문제를 일축하면서 자본이 노동자의 "자기 보존 본능에 의존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동안, 1860년대에는 프롤레타리아가 과로, 영양 부족, 지속적인 전염병 노출로 인해 "사멸 위험에 놓여 있다"는 두려움이 자본가 계급에게 주요한 위기를 안겨주고 있었다. 실제로 수년간의 과로와 저임금은 노동자의 재생산 능력을 심각하게 훼손했고, 산업 분야에서 남성의 평균 기대 수명은 30세 미만이었다. (141쪽)

마르크스는 가사 노동에 무관심했다. 마르크스가 가치 있다고 여긴 노동에 가사 노동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또한 노동자의 세대 재생산을 '본능'의 문제로 이해했기에 임신과 출산을 피하고자 했던 프롤레타리아 여성들의 행동은 그의 고려 대상조차 되지 못했다. 프롤레타리아 계급에 대한 비인간적이고 무분별한 착취의 결과로 노동자들이 '죽어 나가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돈 만들어 내는데 이골이 난 자본가 계급이 상황의 위급함을 먼저 알아차렸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더 많은 노동자, 더 건강한 노동자가 필요했다.

개혁가들의 주요 관심사는 가족과 재생산에 대한 노동 계급 여성의 광범위한 불만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었다. 공장에서 하루 종일 일해 자신의 임금을 벌고, 독립적이며, 깨어 있는 시간 대부분을 다른 여성 및 남성과 함께 공공장소에서 생활하는 데 익숙한 영국 노동 계급 여성, 특히 공장의 "소녀들"은 "다음 세대 노동자를 생산하는 데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집안일을 거부하고 거친 매너와 남성 같은 습관-흡연과 음주-으로 부르주아적 도덕성을 위협했다. (139쪽)

개혁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사회대변혁의 기로에서 자본가와 마찬가지로 남성 노동자들은 여성이 원래의(?) 자리인 가정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138쪽)했다. 여성, 아동과의 경쟁을 물리치면서 남성 노동자들은 자본가 계급과의 협상에서 더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었고, 이는 더 높은 임금 책정으로 이어졌다. 남성/임금노동자와 여성/가정주부로의 설계가 점점 더 정교해졌다. 페데리치는 전업 프롤레타리아 가정주부의 출현이 '절대적 잉여' 가치 추출에서 '상대적 잉여' 가치 추출로 이행(91쪽) 한 결과물이라고 주장한다. 가정 전체의 수입을 책임지는 남성 노동자와 전업 가정주부의 조합은 이렇게 탄생했다.

여성의 자리만 가정이 아니고, 남성의 자리 역시 가정이다. 남성만이 산업 현장에서, 일터에서, 직장에서 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남성처럼 여성도 산업 현장에서, 일터에서, 직장에서 일할 수 있다. 하지만, 일하는 여성에 대한 두려움이 목소리를 얻을 때마다 '여성은 가정으로 돌아가라!'는 구호가 반복된다. 공유지에서 마녀라는 이름으로 쫓겨난 것도 여성이고, 가정으로 돌아가라며 떠밀리는 것도 여성이다. 아이에게 필요한 돌봄의 주체로 호명되는 사람 역시 여성이고, 한없이 추락하는 출생률의 원흉으로 지목되는 사람도 여성이다. '임금의 가부장제'의 민낯이 드러난 이후, 여성들은 가정 아닌 다른 곳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자신의 자존을 지키기 위한 여성들의 투쟁이 이중, 삼중 노동의 굴레로 여성을 더 억압하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어떤 생각, 어떤 도전, 어떤 문화가 필요한 걸까.

건강하고 친화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자존을 지켜가며 여남이 공존하는데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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