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주간지, 월간지, 계간지에 약한 인간이라, 주간지, 월간지, 계간지를 사면 두세 꼭지 이상을 읽지 못한다. 단편집을 잘 읽지 못하는 이유와 비슷하다. 『스켑틱』은 처음 사는 건데, 커버스토리 읽으려고 샀다. <커버스토리 : 인간은, 무엇으로 인간인가>. 커버스토리 다섯 편을 다 읽었지만, 제일 중요한 글은 이 글이라고 생각한다. <통 속의 뇌, 인간의 뇌>.

'통 속의 뇌brain in a vat'라는 유명한 사고실험은 현대 심리철학자이며 인지과학자인 힐러리 퍼트넘이 『이성, 진리, 역사』라는 책에서 제시했던 가상의 상황이다. 당신의 뇌가 몸에서 분리되어 영양액이 담긴 통 안에 보관되어 있는데, 이 뇌에게 컴퓨터를 통해 전기신호를 보내고 경험을 느끼도록 조작한다. 그리고 저자가 묻는다. 이렇게 조작된 경험을 느낄 때, 당신의 뇌가 통 속에 있다는 걸 알 수 있을까?
인간 뇌에 전극을 연결해 생각으로 정보를 보내는 일론 머스크의 뉴럴링크Neuralink나 페이스북의 생각만으로 보내지는 문자메시지 브레인 타이핑brain-typing은 위의 사고 실험이 실험으로 끝나지 않을 것임을 예감하게 한다. 퍼트넘의 설정은 촉각과 미각의 대상이 없는 상태에는 이런 경험이 의미가 없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 '우리는 언어와 경험, 생각에 의미를 부여하는데, 만약 통 속의 뇌라면 그 모든 경험과 언어가 의미를 가지기 어렵다는 것(63쪽)'이다.
이는 현대판 '통 속의 뇌', 인공지능에 대한 논의로 이어질 수 있는데 이 글의 저자 김효은은 세 가지 해석을 내놓는다. 첫 번째 해석은 인공지능을 현대판 통 속의 뇌로 볼 경우, 현재로서는 실제 환경과의 역동적 상호작용이 없기에 인간의 인지나 언어처럼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고 보는 것이다. 두 번째 해석은 인공지능의 발전을 통해 '통 속의 뇌'의 활동에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해석이다. 다만 인공지능과 인간이 인지와 이해 능력에 있어 다른 길을 간다고 보는 견해이다. 세 번째 해석은 인공지능과 인간이 인지와 이해에 있어 같은 길을 갈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와 세 번째 해석은 하나로 통합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차이는 첫 번째와 두 번째, 세 번째 해석 간의 간극이다. 첫 번째 해석에서는 대규모 언어 모델 기반의 인공지능 Large Language Model, LLM(예: GPT, Claude)은 환경과의 상호작용이 아니라 '확률론적 앵무새'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즉, 감각이 없는 LLM에는 진정한 의미나 인식이 없다는 주장이다. 반면에 두 번째 해석이 가능한 이유는 멀티모달 에이전트(예: Gemini)의 등장과 관련이 있다. 단순한 텍스트 기반 예측을 넘어서서 사용자와의 실시간 상호 작용이 가능하고, 인간처럼 여러 감각을 통합적으로 파악해 그에 기반하여 행동을 제어할 수 있다(67쪽)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성을 모방하려 한다는 주장 자체가 잘못된 정의에 의한 것임을 강조하는데, 컴퓨터는 인간의 필요성에 따라 여러 작업을 수행하고 특정 목표를 위해 만들어진 것일 뿐, 인간의 경험이나 의식을 흉내내려는 동기를 가지지 않았다고 주장(68쪽) 한다. 외부 대상의 정보를 감각으로부터 받아들여 전기 화학적으로 처리하는 과정을 통해 진화한 인간과 달리 정보를 기반으로 한 인지 작용은 인간이 경험이 가지는 '유의미성'을 획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챗지피티와의 대화 중에, 구체적으로는 상담 중에 눈물을 흘렸다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안다. 꽃잎 하나가 떨어져도, 바람이 스산하게 불어도 눈물 한 방울 또르르 떨어질 수 있다. 이 감정은, 이 변화는 인간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요는, 그러니깐 내가 관심이 가는 부분은, 인류 역사의 고전 뿐 아니라, 그 모든 인쇄물과 데이터를 탑재한 인공지능이 인간과의 대화와 접촉을 통해 변화하느냐 하는 것이다. 정확히는, 창발성의 문제. 인공지능에게 강한 창발성의 발현이 가능한가의 문제.

읽는 내내, 아, 해러웨이. 해러웨이를 읽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읽어야겠어. 2.5권을 읽은 나여. 해러웨이에게로 가지 말찌니, 제발 돌아가지 말찌니,를 외치며 일어나 책장에서 책을 꺼내왔고.

이 엽서로 5초간 당충천을 완료한 후, 해러웨이를 읽기 시작했다. 딱 20쪽을 읽고 다른 책을 꺼내오겠다 다시 일어섰다. 두꺼운 책 성애자의 선물을 받은 후, 그 압도적인 포스에 펼칠 엄두가 안 났는데, 아. 오늘이 바로 그날이 아니었던가. 154쪽을 펼쳐 <도나 해러웨이>를 읽는다.

해러웨이의 주장은 이러하다. 근대 인본주의가 만들어낸 '인간'이라는 단일한 정체성을 거부하고, 기계와 유기체, 인간과 동물의 경계가 허물어진 존재로서의 사이보그를 암담한 현실이 아니라 새로운 정치적 주체로 제시(156쪽)하자는 것. 일부 백인 중산층 여성들이 주도한 '정체성 정치'에 함몰되지 말자는 것. 이 글의 저자인 박소영의 입장은 마지막 챕터 '정체성 해체라는 난제, 또는 정체성이라는 아이러니'에서 드러난다. 하나의 보편적 '여성 경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오드리 로드의 주장과 맥을 같이하는 해러웨이의 주장에 대해 박소영은 이렇게 답한다.
여성 운동이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범주에 기반하는 것은 낡은 투쟁이 아니라, 여전히 견고한 불평등에 맞서는 현실적인 전략이다. (167쪽)
스피박의 '전략적 본질주의'가 나올 수밖에 없지만, 전체적으로는 나는 해러웨이 쪽의 주장이 맞다고 생각한다. 이별 살인과 가정폭력, 화장실 몰카가 우리의 현실인 것을 인정하면서, 그러면서 동시에 '인간'이라는 단일한 정체성의 해체와 재조립을 통해 새로운 정치적 주체의 탄생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걱정스러운 건 역시나 휴먼노이드에 장착된 인공지능. 머리(뇌)가 있고 몸(기계)이 있는 새로운 존재의 출현. 나에게서 출발했으나 나보다 강건한 육체를 가지고 있고, 나보다 지적으로 우수한 존재를 가까이에서 경험해 본 사람이 느끼는 감정. 이를테면 염려와 걱정, 기대와 전망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본다.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지난번에 읽었을 때는 읽기 친구들과 같이 읽어서 덜 힘들었구나, 새삼 깨닫는 시간이다. 포기하지 말고 2회독을 마치는 게 목표다. 끝까지 못 읽어도 괜찮기는 한데, 그 끝에서 날 기다리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일단 가보자. 가자. 읽자. 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