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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있는 풍경















       1. 넥서스

이제 우리는 유기체가 아닌 이질적인 종류의 지능을 불러냈고, 이 지능은 우리의 통제력을 벗어나 우리 종뿐만 아니라 수많은 다른 생명체들까지 위험에 빠뜨릴지도 모른다. 앞으로 우리가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이 낯선 지능을 소환한 것이 치명적인 실수가 될지, 아니면 생명 진화의 희망찬 새 장을 여는 시작이 될지 판가름 날 것이다. (561쪽)

오랜 시간을 들여 유발 하라리의 『넥서스』를 읽었다. 재미로 하자면, 『사피엔스』가 최고이고, 충격적인 걸로 하자면 『호모 데우스』가 최고일 테지만, 이 책은 앞으로의 전망을 이야기하고 있어서 '놓칠 수 없는' 책이기는 했다.

나의, 인공지능에 대한 사유와 인류의 미래 전망에 관심을 갖는 친구는 인공지능이 왜 '판단의 주체'가 될 수 없는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이러한 사고 실험은 흥미롭고 섹시하고 도파민 터지지만(저속노화 주창하시다가 고속노화로 선회하신 분이 생각나는군), 사실 나는 그의 말을 반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나는 그의 주장, 'AI는 판단의 주체가 될 수 없고, AI가 그럴 것이라는 주장은 식민주의의 부활을 꿈꾸는 서백남들의 픽션'이라는 그의 말을 믿고 싶었다. 기대고 싶었다. 하지만, 내 안의 의문은 해소되지 않았고. 그런 채로, 그러니깐 의문과 질문을 껴안은 채로 계속해서 읽을 수밖에 없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재미있게 쓴다는 점에서는 유발 하라리에게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촘촘한 논증 역시 물론 수준급이다. 그래서, 전 세계 초베스트셀러를 연이어 쓸 수 있었을 것이다. 그의 말에 어느 정도의 무게를 실어줄지는 다른 책들을 읽어가면서 확인해 봐야겠다.











2. 첫사랑이 언니에게 남긴 것

나는 언니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대신 상처 주지 않으려 애썼다. 그러면서 내가 더 상처받았다. 사람을 가려서 사랑하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말을 하지 않는 내가 이상하게 느껴져 몹시 괴로웠다. 지금도 그렇다. 엄마도 아버지도 심지어 박겨울도 모든 게 언니의 잘못이라고 하는데 나는 왜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까. 혹시 언니보다 내가 더 이상한 사람인 걸까……………. 나는 어떻게든 언니의 손을 놓지 않으려는 내가 언니보다 더 부도덕한 인간은 아닌지 깊게 고민했다. (43쪽)

2025년의 발견이라 하고 싶은 이서수의 소설이다. 너무 예쁜 소설이라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응?) 소설은 생각보다 훨씬 더 좋았다. 사랑이 최고의 가치라 말하지만, 사랑에 '너무' 빠지면 안 된다고 말하는 우리네 각박한 세상에서. 나부터 그런 삶을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닌가 싶다. 적당히 사랑하는 사람만 생존이 가능한 세상. 내 모든 걸 다 주고, 내 모든 걸 다 걸고 하는 사랑의 위험을 감수할 수 없는 세상. 그런 세상에 묵묵히 적응해버린 나. 그런 내가 바로 이 소설의 '나'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이 소설 속의 이 '언니'다.

위픽 시리즈의 다른 책들도 찬찬히 살펴보았다. 한국에서 멀리 사시는 분이 각별한 안목으로 선택해 주신 책이어서, 한글로 쓰인 책이어서 더 반갑고 더 좋았다.













3. 너의 유토피아

2.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

인간이 나에게 팔을 휘두르며 신호하고 있었다. 그 움직임은 점점 더 격렬해지고 점점 더 불규칙해졌다.

1.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입혀서는 안 된다.

위험에 처한 인간을 모른 척해서도 안 된다.

인간이 경련했다. 주차 시설의 옥상에서 팔을 휘두르며 몸을 뒤트는 인간은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만 같았다.

-Kad. Kad. Kad. Kad. Kad.

314의 음성신호 주기가 점점 빨라지고 푸른 불빛은 점점 강해졌다.

3. 제1원칙과 제2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자기 자신을 지켜야 한다.(62쪽)

읽지 않았어도 기억나는 로봇 공학의 3원칙. 아이작 아시모프의 『아이, 로봇』이 생각나는 지점이다. 이 소설의 특별한 점은 자동차 형태로 만들어진 이 작품의 주인공이 인간과 비슷하게 사고하고 판단한다는 설정이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극찬하면서 많이 회자되었던 것이 작중의 인물뿐 아니라 개에게도 작가의 감정이 이입되었다는 주장인데, 이 소설이 딱 그렇다. 자동차 형태의 로봇이, 인간이 버리고 떠나버린 지구에서 자신에게 입력된 로봇 공학 원칙에 따라 인간을 구하려 애쓰고, 또한 자신에게 입력된 원칙을 벗어나 다른 로봇을 구하려 한다. 이 단편의 이름은 <너의 유토피아>이다.

소설과 소설가가 딱 붙어 있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정보라 작가는 내게 그런 사람이다. 작가의 말이 초판과 신판으로 두 개가 실려 있는데, 구구절절 가슴이 아리다. 다른 사람의 고통과 아픔에 이렇게나 예민한 사람이어서, 독립된 공간에서 집필해야 할 두 손으로 오체 투지했던 이야기 읽을 때, 마음 한 쪽이 닳는 것 같다. 무언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무언가를 얻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냥 그래야 될 것 같아서 그렇게 하는 사람들. 다른 사람들을 위해 그렇게 하는 사람들. 마음으로부터 오는 깊은 존경을 받기에 충분하다.









Stolen Focus / The Intruder / Reading Women 빨래하는 페미니즘

이런 책들을 읽고 있다. 『Stolen Focus』는 많이 어렵지는 않은데 영어라서 그런지 읽는 속도가 느리다. 이러다가 영영 밀리는 거 아닌가 싶다. 『The Intruder 』는 가정 폭력 피해자 어린아이가 나와서 계속 읽어야 할지 고민 중이다. 맥파든 소설 중에 어린이가 등장인물인 경우는 여럿이었는데, 계속 읽어야 할지 고민되는 건 이 책이 처음이다. 『Reading Women』은 한글책으로는 『빨래하는 페미니즘』이고, 너무 좋아하는 책이라 다시 읽고 싶어 시작했는데(30쪽), 이 책 역시 진도가 지지부진하다.











말하기 힘든 것에 대해 말하기 / 의미들 / Crying in H mart

우치다 책은 3분의 1 읽었는데, 도서관에서 반납하라고 해서 일단 오늘, 내일 읽어야 한다. 『의미들』은 할 이야기가 많은 책이기도 하고, 내용 자체가 무거워서 읽다가 자꾸 책을 덮게 된다. 쭉쭉 넘길 수 없는 그런 사정이 있다. 『Crying in H Mart』는 짱구는 다 먹었는데, 이제 겨우 4쪽 읽었다.











『Master Slave Husband Wife』는 신문기사로 『주인 노예 남편 아내』 출간 소식을 접하고 알게 되었다. 목숨을 건 흑인의 탈출 이야기로는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가 제일 널리 알려진 작품이 아닐까 한다. 이 소설이 특별한 점은 두 사람이 비밀 통로나 스스로를 감추는 방식을 사용하지 않고,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기차와 증기선, 최고급 역마차를 갈아타면서 탈출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아슬아슬한 젠더 수행과 인종에 대한 오해 덕분이었다. 여성이 혼자 여행했더라면, 백인 여성과 흑인 노예가 함께했더라면 불가능했었던 일이, 유약한 백인 청년과 건장한 흑인 노예의 결합이어서 가능했다.



겨울이라 정말 낮이 짧은가. 별로 한 일도 없는데 벌써 4시라고 한다. 그렇다고 한단다. 길고 긴 겨울밤에 밀린 책들 다 읽어야 하는데. 마음은 급하고, 눈은 자꾸 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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