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명화 아니고, 추석의 영화.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너무 쎄서 좋아하지 않는다. <올드보이>, <설국열차>, <아가씨>를 안 봤다. 이영애 나온다고 해서 <친절한 금자씨>를 극장에서 보고 나서, 내가 다시는! 박찬욱 영화는 안 본다! 다짐했는데 <헤어질 결심>은 3번 봤다. <어쩔수가없다>도 보려고 본 게 아니고 공짜표 생겨서 갔다.
따라잡을 수 없는, 혹은 따라잡을 필요 없는 교양의 한 부문이 '음악'이라 생각했던 나인데, 들어가는 음악에서 적잖이 놀랐다. 무슨 음악인지 모르겠는데, 나가면, 이 영화가 끝나고 밖으로 나가면 꼭 찾아봐야지 싶었는데, 전 세계 사람들에게 익숙한 모차르트의 작품이었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3번 2악장. 음악을 모르는데도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 내내 따라잡을 수 없고, 그럴 생각도 없지만, 다시 한번 부러워지는 대목이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3번 2악장을 원하는 곳에 넣을 수 있는 삶. 그 대척점에는 가왕 조용필의 <고추잠자리>가 있다. 이병헌, 이성민, 염혜란이 등장하는 그 장면이 나는 이 영화에서 제일 좋았다.


두 번째 영화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이다.
18살에 내가 사랑했던 레오, <토탈 이클립스>의 레오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어디선가 본듯한 후덕한 아저씨가 화면을 가득 채운다. 영화 속 레오의 삶도 고단한 편이어서 슬픔과 애잔함은 더 크게 느껴진다. 나의 레오, 나만의 레오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무장혁명단체의 일원이었던 밥(레오)과 머리부터 발끝까지 진정한 혁명투사인 퍼피디야(테야나 테일러), 두 사람의 사랑과 이별, 그리고 남겨진 아이. 16년 뒤 그들을 찾아온 위협과 탈출의 과정이 미국의 계급, 인종, 총기 문제 등과 어울려 그려진다. 혁명이란 무엇인가. 이상을 향해 달려가는 삶이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그려지고, 후덕한 레오의 망가진 모습이 비극적으로 동시에 희극적으로 그려진다. 레오가 등장할 때마다 나는, 그리고 극장의 관객들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주의 사항, 잘생겨서 웃는 거 아님.


작품 전체를 통틀어 가장 유능한 사람은 퍼피디아(흑인 여성)와 레오 딸의 가라테 사부인 세르지오(남미계 남성/베니치오 델 토로)이다. 중요한 백인 남성 둘 중 하나는 한때 유능했으나 현재는 무능하고 형편없는 삶을 살거나(밥), 자신의 목적을 위해 다른 이들을 억압하는, 지극히 인종차별적이고 사악한 사람(스티븐 J. 록조/숀 펜)이다. 순혈에 대한 백인의 강박, 정확히는 서백남의 강박이 얼마나 강고한지도 주요한 감상 포인트가 될 텐데,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들만의 리그, 소수 정예 인너써클이 얼마나 폐쇄적이고 협소한지 밝혀진다.
한때 세계의 경찰을 자임했던 미국의 몰락은 현재 진행형이다. 착한 척이라도 했던 미국이 본격적으로 자국의 이익만을 우선시하겠다고 했을 때, 이민자 단속과 무역 제제를 통해 혼자만 잘 살겠다고 나섰을 때,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라고 부르짖을 때, 그 중심에는 도널드 트럼프가 있다.
미국을, 그리고 세계를 움직이려 하는 서백남들. 미국의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와 그를 움직이는 힘에 대해 알기 위해 읽어야 할 책은 『이병한의 아메리카 탐문』이라고 한단다. 그래서, 서둘러 대출해 두었고.
지금 읽고 있는 책은 이렇다.
같이 읽어요 약속했던 잭 리처의 『어페어』
제인 에어 다시 보기의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
읽어도 읽어도 아직도 많이 남은 배세진의 『금붕어의 철학』
친구가 읽는다길래 따라 사 둔 책은 『Stolen Focus』
내내 읽어도 맨날 맨날 재미난 책은 『The Love Hypothesis』
읽으려고 부릉부릉 준비 중인 책은 『김대식의 AGI, 천사인가 악마인가』
인공지능이든 코딩이든 AGI든 아무것도 모르지만, 김대식에 대해서도 할 말이 있는 나.
나, 이런 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