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락방님 서재에서 알게 된 『행복의 기원』을 읽었다.
다락방님의 글은 여기(행복의 기원, 음식과 사람, https://blog.aladin.co.kr/fallen77/15858376)에.
행복이란 안정적인 상황에서 느끼는 편안한 감정 양태가 아니라, 진화의 과정 속에서 더 큰 쾌감을 얻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은 그간 아리스토텔레스 행복론에 길들여진 사람들에게는 다소 충격적이다.
인간은 100% 동물이고, 지구상의 다른 동물, 아니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들과 마찬가지로 생존과 번식을 위해 존재한다는 게 이 책의 주장이다. 고기와 매력적인 이성(딱 정해져 있다기보다는 진화의 과정에서 유성생식을 선택했던 생명체들이 더 고도의 진화 과정을 거쳤고, 더 많은 수를 차지한다는 의미에서 일단 이성이라고 쓴다). 살아남기와 짝짓기. 인간은 100% 동물이라거나 행복이 생존과 번식을 위해 작동하는 뇌의 속임이라는 주장에 다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런 해석이 가능하다고는 생각한다.
다만, 인간이 생존확률만을 위해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만약 행복의 조건을 모두 갖춘 사람이 있다면 어떨까. 일생일대의 필생 작업, 메이팅을 완료한 상태에서 외부의 위협(추위, 더위, 눈, 비, 사나운 동물, 뱀 기타 등등)이 없고, 쾌적한 생활(샤워 시설, 수세식 화장실)을 영위할 수 있으며, 맛있는 음식이 가득한 냉장고와 배달앱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 그 사람은 행복할까. 계속 행복할 수 있을까. 아니, 행복해야만 할까.
처음엔 행복할 수 있는데, 계속 그럴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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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락의 총량은 늘릴 수 없다. 뇌의 보상 체계가 가진 또 하나의 특징은, 더 강한 자극원에 노출되면 더 약한 자극원에 대한 보상의 정도가 급감한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 중독을 일으키는 자극원에 대한 뇌의 반응은 기능성 자기 공명 영상 functional magnetic resonance imaging, fMRI 이나 양전자방출단층촬영positron emission tomography, PET을 활용한 연구를 통해 구체적으로 입증되었다. (『당신도 느리게 나이 들 수 있습니다』, 34쪽)
쾌락의 총량은 늘릴 수 없다. 더 강한 자극을 경험한 이상 이전의 '소소한' 행복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
나는 이 책에서 반복되는 '행복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인인 유전, 더 구체적으로는 외향성(133쪽)'에 더해 '자족하는 마음'이 행복에 중요한 요소라 생각한다. 8을 가져도 부족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6에도 만족하는 사람이 있다. 성장과 팽창의 시대라고는 하지만, 이러한 성향 역시 '타고 나는' 측면이 강하다. 가르쳐서 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생겨 먹은' 성향일 수 있다는 가정이다.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싶어서 가지는 게 아니라, 긍정적인 사람은 내내 그렇다. 그냥, 모든 상황에, 환경에 긍정적이다. 그렇다면 행복은 '유전'의 문제로 돌아온다.
'사람'이 행복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했을 때, 왜 한국이나 일본 같은 초집단주의적 문화의 행복감이 그렇게 낮은지에 대한 부분도 인상 깊었다. 집단주의 문화에서의 과도한 타인 의식을 그 주요한 요인으로 꼽았는데, 체면과 의례를 중시하는 문화라는 측면에서는 설득되었고, 이제 이러한 문화들이 눈에 띄게 변화하는 시기라는 생각도 들었다. 술집과 노래방을 전전하던 회식 문화가 뮤지컬 감상과 고급 레스트랑 탐방으로 바뀌어가고, 1차부터 시작해 언제 끝날지 모르던 긴긴밤이 식사 후 티타임으로 바뀌어간다는 소문이 들려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전제 조건이 있다. 친구가 무조건 많은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몇 명의 '진짜 친구'가 있는지가 중요했다. 만남의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자유감의 중요성이 또 다시 등장한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만나는 사람들보다 만나고 싶어서 만나는 사람들이 많아야 한다.(177쪽)
어쩔 수 없이 만나는 사람들보다 만나고 싶어서 만나는 사람이 많아질 때 행복해진다고 한다. 제일 좋은 방법은 매일 만나는 직장 동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인데,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정말... 부럽다. 그다음 방법은 만나고 싶어서 만나는 사람과 자주 만나는 것인데, 좋아하는 친구를 자주 만나면 된다. 이 책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문장이랑 상응한다고 할 수 있겠다.
우리는 부러워할 만한 경제 수준의 나라에,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친구들과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쾌적한 나라에 산다. (179쪽)
100% 동감이다. 다만 이번 주에는 못 만난다. 이번 주에는 만나야 하는 사람을 만난다. 외향적이고 긍정적인 나는, 이 만남을 어쩔 수 없는 만남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만나서, 나름대로 괜찮은, 꽤 괜찮은 시간을 보내보려고 한다. 심심하고 약간 지루하긴 하겠지만, 나름 재미있는 시간으로. 그렇게 이번 주를 보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