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얼마나 이분법적인 사람이던지. 그러니까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그렇게 생각했던란다. <자본주의의 폐허에서 가져보는 삶의 가능성>. 아~~ 농촌의 삶, 자연의 삶. 버리는 삶, 더 자유로워지는 삶. 그랬다. 나는 그렇게 버섯을 따라갔다. 따라가며 읽었다. 송이버섯 모르고 새송이버섯만 아는 사람의 버섯책 읽기란 그런 것이다.
송이버섯은 심하게 교란된 숲에서만 자란다. 송이버섯과 소나무는 일본 중부에서 짝을 이루며 서식하는데, 둘 다 심각한 산림 벌채가 행해진 곳에서만 자란다. 정말이지 전 세계적으로 봐도 송이버섯은 가장 많이 교란된 유형의 숲과 관련이 있다. 빙하, 화산, 모래언덕-또는 인간의 행위 -때문에 다른 나무와 심지어는 유기질 토양까지 없어져버린 장소 말이다. (102쪽)
인간에 의해 자행되는 잔혹한 자연 파괴의 현장에서, 바로 거기에서 송이버섯이 자란다. 소나무와 짝을 이뤄 자란다. 가장 많이 교란된 유형의 숲에서 자란다. 아무것도 없이 황폐화된 그 곳에서 자란다. 인간의 예상을 뒤엎는 버섯의 등장, 그리고 버섯의 성장. 인간은 모른다. 알 수가 없다. 이 버섯이 어디서 오는지를, 어떻게 자라는지를...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체르노빌의 목소리』를 읽고 나는 이 지구가 멸망한다면 그건 핵폭발 때문일거라 생각했고, 핵 오염물, 핵 폐기물과 함께 살아간 후손들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사나흘을 불편하게 보내기도 하였으나. 아뿔싸! 그 불쌍한 인류는 후손이 아닌 바로 우리였으니 일본의 전격적인 방사능 오염수 방류. 해류는 한반도 쪽으로 3-4년 이내에 도착 예정.
플라스틱이 배에 가득차서 죽게 된 흰긴수염고래의 사진을 보면 알게 된다. 고래만이 아니라 우리도 곧 죽게 되리라는 걸. 멈추지 않는 진보의 꿈. 멈추지 않는 공장. 멈추지 않는 돈벌이. 멈추지 않는 노동. 인간이 더 이상 이 지구에 살 수 없으리란 걸 진작부터 알고 있던 돈 많고 머리 좋은 사람들은 우주로의 이사를 서두르고 있다. 내가 죽기 전에는 실용화되지 않을테지. 뇌를 다운로드하는 비용은 엄청날 것야. 로봇팔, 로봇다리도 마찬가지고. 인공피부는 또 얼마나 비쌀텐가.
나는야...
청산에 살어리랏다
나의 청산은 지구
지구 끝, 세계 끝에는 버섯
내 머리는 버섯모양
나는야 버섯돌이
버섯돌이, 청산에 살어리랏다
배치assemblage는 유용한 개념이다. 생태학자는 때로 고정되고 제한된 함의를 갖는 생태적 ‘공동체‘를 벗어나 배치로 관심을 돌렸다. 하나의 배치 안에 존재하는 여러 생물종이 어떤 방식으로 서로 서로 영향을 끼치는지는 결코 정해져 있지 않다. 어떤 것은 서로를 방해하고 (혹은 먹고) 어떤 것은 생존을 위해 협력한다. 또 이것은 자신들이 같은 장소에 있음을 이제 막 우연히 알게 됐다. 배치는 열린 모임 gathering이다.- P56
어떻게 모임은 때때로 부분들의 합보다 더 큰 ‘사건happenings‘이 되는가? 만약 진보를 뺀 역사가 불확정적이고 다각적이라면, 배치가 그것이 지닌 가능성을 보여줄수 있는가?- P57
나로서는 다른 존재-인간이든 비인간이든-에게 도움을 구하지 않고서 직면할 수 있는 도전이라는 것은 생각조차 하기 어렵다. 우리가 각자 홀로 생존한다는 식의, 사실과 정반대되는 환상을 품을 수 있는 건, 다른 존재를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특권이 있기 때문이다.- P66
오가와 박사는 많은 아이러니와 웃음으로 노스탤지어를 음미한다. 우리가 송이버섯이 없는 사찰의 숲 옆에서 비를 맞으며 있는 동안 그는 일본의 송이버섯 사랑이 한국에서 기원했다고 설명했다. 이 이야기를 듣기 전에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는데, 일본의 민족주의자들과 한국인들은 사이가 나쁘다는 것이다. 한국의 귀족이 일본의 문명을 시작했다는 오가와 박사의 설명은 일본인들의 신경을 거스르는 발언이다. 그의 이야기 속에서는 문명이 모두 좋은 것만은 아니다.- P101
오가와 박사의 이야기는 노스탤지어를 고려하고 있기에 흥미로웠지만, 또 다른 면도 생각하게 했다. 송이버섯은 심하게 교란된 숲에서만 자란다. 송이버섯과 소나무는 일본 중부에서 짝을 이루며 서식하는데, 둘 다 심각한 산림 벌채가 행해진 곳에서만 자란다. 정말이지 전 세계적으로 봐도 송이버섯은 가장 많이 교란된 유형의 숲과 관련이 있다. 빙하, 화산, 모래언덕-또는 인간의 행위 때문에 다른 나무와 심지어는 유기질 토양까지 없어져버린 장소 말이다.- P102
자본주의적 농장은 부를 모으기 위해 생태적 과정을 통해 형성된 살아 있는 존재들을 끌어들인다. 나는 이를 ‘구제salvage‘라고 부르는데, 자본주의적 통제를 받지 않고 생산된 가치를 써먹는 것을 의미한다. 자본주의적 생산에 사용되는 많은 원료는 자본주의가 시작되기 훨씬 전부터 존재했다(석탄과 석유를 생각해보라). 또한 자본가들은 ‘노동‘의 전제 조건인 인간 생명을 생산할 수 없다. ‘구제 축적‘은 선두 기업이 상품 생산 조건을 통제하지 않고 자본을 축적하는 과정이다.- P120
송이버섯 채집은 도시라는 유령에 사로잡혀 있지만, 도시는 아니다. 채집 또한 노동이 아니다. ‘일‘조차도 아니다. 라오계 채집인 사이는 ‘일‘이란 자신의 상사가 시키는 작업을 하면서 그에게 복종하는 것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반면에 송이버섯 채집은 ‘찾는 행위‘다.- P146
백인 채집인은 자신들을 폭력적인 참전용사일 뿐 아니라 혼자있기를 좋아하고, 강인하고, 지략이 뛰어난 자급자족적인 산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전쟁에서 싸워보지 않은 사람들과 연결되는 지점 중 하나는 사냥이다.- P1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