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이 책을 발견했을 때부터 표지의 선명한 노란색에 눈길이 갔다. '치즈'라는 책 제목처럼 애니메이션 속 생쥐가 좋아하는 치즈 같은 노란색이다. 게다가 나도 치즈를 좋아하니 언젠가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생각만 하고 잊고 있던 와중에, 얼마 전에 읽은 『베트남 간식』과 이 책이 같은 시리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덕분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의 부제는 '치즈가 좋아서 떠난 영국 치즈 여행기'다. 하지만 다양한 치즈를 맛보며 느긋하게 즐기는 식도락 여행기는 아니다. 저자가 직접 영국에 어떤 치즈 농가들이 있는지 찾아보고 하나하나 방문 허락을 받고, 한 곳 한 곳 방문해 치즈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기록했으니 '나의 영국 치즈 답사기'라고 할 수 있다. 책의 대부분은 각 치즈의 역사와 현황, 저자가 보고 듣고 경험한 제조 공정과 거기서 알게 된 것들이다. 책 속 사진들도 대부분은 완성된 치즈가 놓여 있는 선반이나 치즈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찍은 것이다. 그러니 화려한 치즈의 향연을 기대한 사람들은 당황스러울 수도 있다. 이건 여행이 아니라 견학이잖아?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저자는 즐기러 간 것이 아니라 배우러 간 것이고, 치즈의 소비보다는 생산에 더 관심이 많으니 견학이 맞다. 이 책에서 주로 다루는 것은 치즈의 소비가 아닌 생산이다. 생산 공정과 그 공정 하나하나에 공을 들이는 사람들이다.
사실 이 책에 등장하는 치즈들은 큰 틀에서 보면 비슷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우유를 준비하고, 거기에 산을 넣어 단백질을 응고시키고, 응고된 덩어리를 건져내 수분을 빼내고 모양을 잡고, 저장고에서 숙성시키면 완성. 그러나 치즈에 넣는 산의 양이나 소금의 비율부터 수분을 빼는 방법, 제조 작업에 사용하는 도구까지 각각 조금씩 다른데, 그 작은 차이가 치즈의 개성을 만들어낸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각 치즈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기록하고, 각각의 과정이 치즈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설명한다. 그저 촬영하고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치즈 제조자들과 함께 작업하면서 치즈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려야 하는지 실감한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것은 치즈를 만드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모두 잠든 이른 새벽에 일어나 온몸의 힘을 써야 하는 중노동을 하고, 좋은 우유를 만들 수 있도록 소들까지 돌본다. 이런 고된 일이지만 자기 일에 자부심을 갖고 즐겁게 일한다. 저자가 찍은 이들의 모습에는 자기 일을 사랑하고 그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의 위엄과 품위가 있다. 그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눌 줄 안다. 자신들이 만드는 치즈에 관심을 갖고 배우고 싶어 한다는 이유만으로 일면식도 없는 이방인인 저자를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처럼 따뜻하게 환대한다. 같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의 유대감은 어떤 차이나 경계도 뛰어넘는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한다.
책날개에서 저자는 이 책을 '느리고 깊게 만난 그동안의 나의 치즈 이야기'라고 요약한다. 그 말대로 이 책은 이곳저곳 바쁘게 움직이며 최대한 많은 치즈를 맛보고 그 맛을 현란하게 묘사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물을 마실 때는 그 물의 근원을 생각하라'는 말처럼, 저자는 자신이 사랑하는 치즈의 근원을 찬찬히 파헤쳐 나가고, 그 뒤에서 묵묵히, 성실히 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조명을 비춘다. 저자는 10년 전의 여행을 책으로 내기 위해 분투하다 결국은 출간해 냈으니, 좋은 치즈를 만들기 위해 수십 년 동안 매일 성실히 노동하는 치즈 제조자들만큼이나 인내심이 강하다. 좋아하는 것에 대한 우직한 이 기록은 천천히 씹으면 그 풍미를 느낄 수 있다는 데서 치즈와 닮았다.
P. S. 『베트남 간식』처럼 큰 판형에 사진들도 큼직하게 넣고 잡지 같은 감각적인 느낌으로 디자인했다. 속표지까지 선반에 놓인 치즈 사진으로 채우고, 치즈 외의 다른 것을 이야기하는 '치즈 더하기' 코너와 에필로그는 잘 익은 치즈 같은 레몬색을 바탕색으로 한 데서 치즈 이야기에 가장 잘 어울리는 외형을 만들어내려 고심한 것이 느껴진다.
다만 치즈 전문점 닐스 야드 데어리의 매장 구조도(53페이지)는 영어판 그대로 넣지 말고 텍스트들을 한국어로 번역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리고 책들에서 원어 표기하는 데 흔히 쓰이는 위첨자를 덧붙이는 말에도 쓰는 것은 『베트남 간식』에서와 마찬가지인데, 문장이 길 때는 가독성이 떨어진다. 독특한 시도이긴 하지만 독자에게는 가독성이 먼저이니, 그냥 문장 바로 뒤에 다른 본문들처럼 처리하거나 괄호 안에 넣는 게 더 좋았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