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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티안님의 서재
  • 베트남 간식, 시간과 시간 사이에서 만난 작고 다정한 ...
  • 진유정
  • 19,800원 (10%1,100)
  • 2024-10-28
  • : 208

마음이 답답할 때는 먼 나라의 이야기나 예쁜 사진들이 가득 실린 책을 읽으며 기분 전환을 한다. 그런 책을 찾으러 도서관의 실용 분야나 여행 서적 코너 앞에 서서 책등이나 표지, 제목만 봐도 끌리는 책을 펼친다. 이 책도 그렇게 발견한 책이었다. 앞으로 가보려는 나라 중 베트남은 1순위가 아니었지만 베트남 음식 전체도 아니고 '간식'만 다루고 있다는 데 호기심이 갔다. 베트남의 간식거리 중 내가 아는 건 하나도 없으니 새로운 것을 알게 된다는 게 설렜고, 책을 훑어보니 예쁜 음식과 풍경 사진들이 많아 보면서 마음을 달래고 싶었다. 그러니 실제로 베트남 여행에 도움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분 전환을 위해 이 책을 선택했다.

이 책은 그런 내 선택에 맞는 책이었다. 베트남의 어디에 어떤 맛집이 있고 거기에선 어떤 음식을 팔며, 어느 요일 몇 시에 문을 열고 문을 닫는지에 대한 정보는 없다. 저자가 간 곳 중 몇 곳은 이제 문을 닫아 갈 수 없다고 한다. 이 책은 베트남 간식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알려주기보다는, 저자가 베트남에서 먹었던 간식들과 그에 얽힌 추억들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새벽과 아침 사이, 아침과 점심 사이, 점심과 저녁 사이, 저녁과 밤 사이 이렇게 간식을 먹는 시간대별로 챕터를 나누었지만, 꼭 특정 시간대에 먹어야 하는 음식도 없다(가게가 문을 여는 시간에는 맞춰서 가야겠지만). 저자가 마침 그 시간대에 먹었을 뿐. 하지만 그 순간에 그 음식을 먹었기에 그 순간도 그 음식도 저자의 기억 속에는 특별하게 남아 있다. 이른 새벽부터 할머니 바리스타가 내려줬던 달콤하고 따뜻한 연유 커피부터 밤비 내리는 밤에 동네 디저트 가게에서 만든 투박한 간 케이크(베트남어로는 '반간'인데 간을 넣어서가 아니라 생김새와 색이 간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까지. 베트남에 발 한 번 들여놓은 적이 없는 나도 글과 사진을 보면서 그 순간을 공유한다.

반미와 야채 절임, 달걀 프라이와 잠봉, 파테(간이나 자투리 고기를 간 것에 밀가루 반죽을 입혀 구워낸 프랑스 음식), 볶은 양파, 베트남식 소시지를 함께 먹는 음식 반미짜오

사실 이 책에 실린 베트남 간식 중 내가 알거나 먹어봤던 음식은 하나도 없다. 그나마 베트남식 바게트 반미와 다른 음식의 조합인 '반미씨우마이', '반미짜오', '반미팃씨엔느엉'은 반미를 먹어봤으니 반은 먹어봤다고 할 수 있을까. 연두부에 코코넛 밀크와 떡 같은 고명을 넣어 먹는다는 음식 '따오퍼'는 대만의 또우화와 비슷한 맛일 것 같은데, 나는 또우화를 한국에서 버블티에 얹힌 고명으로만 먹었으니 따오퍼와는 거리가 있을 것이다. 이 책에 실린 모든 음식의 맛은 저자의 설명과 묘사, 사진으로 짐작하고 상상해 보았다. 새우, 돼지고기, 라이스페이퍼, 숙주나물 등 맛을 아는 재료들로 만들어졌고 저자의 묘사도 생생하니 왠지 아는 맛일 것 같다. 그래도 직접 맛보고 싶다. 이런 상상을 하는 것 자체가 즐거웠다. 그리고 그 음식을 먹었을 때 느끼고 생각했던 것들을 담백하면서도 감각적인 문장으로 풀어놓아, 내가 베트남 어느 작은 도시 어느 작은 가게의 플라스틱 목욕탕 의자에 앉아 일회용 접시에 담긴 간식을 먹는 기분이 들었다. 밖에서 밝아오는 하늘이나 쏟아지는 비를 바라보면서. 그렇게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을 간접적으로라도 여행하고 싶은 마음을 달랬다. 현실 도피지만 어느 드라마 제목처럼 때로는 도망치는 것도 도움이 된다. 그리고 언젠가는 정말 갈 수 있지 않을까. 그때는 책에 나온 베트남 간식들과 그것을 먹었을 때 나의 감상을 쌓아갈 수 있겠지.

P. S. 1. 한국학술정보에서 낸 책이라 학술 서적 같은 투박한 느낌의 디자인일 줄 알았는데 표지도 본문도 잡지 같은 느낌의 감각적인 디자인이다. 다만 책 판형이 꽤 큰 데 반해 각주와 사진 설명, 쪽 번호의 글씨 크기는 너무 작아서 불편하다. 글씨가 작은 게 디자인의 측면에서는 더 예쁘다고 해도 6포인트는 너무 작다.

P. S. 2. 더운 나라의 음식을 소개하는 책인데 시원한 음료, 빙과보다는 고기, 채소, 탄수화물로 이루어져 가벼운 한 끼로도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많다. 흔히 간식으로 생각하는 단것, 과자보다는 정말 '삼시 세끼 중간의 끼니'라고 할 수 있는 음식들의 비중이 크다. 저자가 그런 간식을 선호하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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