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바스티안님의 서재
  • 당신은 제게 그 질문을 한 2만 번째 사람입니다
  • 오혜민
  • 15,120원 (10%840)
  • 2025-02-10
  • : 4,685

이 책은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라고 이야기했을 때 흔히 받게 되는 열여덟 가지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들을 모은 책이다. 오죽 이런 질문들을 많이 들었으면 제목부터 '당신은 제게 그 질문을 한 2만 번째 사람입니다'일까. 이 책에 실린 질문 중 '성차별은 다 과거의 일이지 않나요?'는 나도 실제로 회사의 남성 동료에게서 받은 질문이고, 목차의 다른 질문들도 온라인에서나 오프라인에서나 자주 보아온 것들이다. 그 질문들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알고 싶어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저자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6년 동안 페미니즘을 가르쳐온 사람인데, 페미니즘 관련 수업이 필수 과목이었기에 페미니즘에 적대적인 학생들도 많이 만났다. 그렇다 보니 책 전반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편견과 몰이해, 폭력적인 시선에 대한 피로감이 느껴진다. 그럼에도 독자에게 '그동안 애써온 당신은 잠깐 쉬어도 괜찮다'며 '이제 제가 조금 답해 보겠다'고 말하는 서문에서부터, 모든 편견과 계속해서 싸우며 살아가야 할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 페미니즘이라면 무조건 적대감과 거부감을 보이는 학생들이나 학교 밖의 사람들도 증오하지 않고, 그들을 설득하고 그들과 함께 살아가려고 한다. 페미니스트들이 자신과 반대 되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무조건 적대적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편견을 깨는 모습이다.

페미니즘을 오해하는 사람들은 미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성에 대한 편견과 혐오 자체에는 단호하게 맞서고, 질문 속에 숨은 뒤틀린 의도는 날카롭게 간파한다. '성평등을 이야기하면서 군대 얘기는 왜 안 하냐'는 질문 뒤에는 여성의 열등함을 증명하고 군대 얘기를 꺼내는 것일 뿐, 여성 징병과 여군, 군대 내 위계 폭력과 그에 대한 방지법에 관해서는 진지하게 이야기할 열의가 없어 보인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여성과 함께 논의하고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방법으로 해결해 가려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알아챈 것이다.

아쉬운 것은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이 생각보다 너무 간략하다는 것이다. 한 질문에 대한 답에 주어진 분량은 8페이지 정도인 데다 책 크기는 손바닥 두 개를 합친 것만 하다. 앞에서 이야기한 '성평등과 군대' 관련 질문에는 그 질문에 깔려 있는 의도를 이야기하면서, '정말 군대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지는 않다'며 '당신이 군대에 대해 얘기할 준비가 되었다면 그때 말해봅시다'라며 마무리한다. 그러나 그런 저열한 의도가 깔려 있더라도, 여성과 군대 문제에 대해 더 자세히 이야기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청소년들을 위한 인권 교육 도서 『잠깐! 이게 다 인권 문제라고요?』에서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남성만 징집하는 것이 특정 연령대의 남성만으로도 필요한 군인 수를 채울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국방의 의무에는 병역뿐만 아니라 군 작전에 협조하거나 전시 근로 동원에 응하는 의무도 있기에, 군대를 가지 않는다고 해서 국방의 의무를 지키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징병제가 있는 국가들 중 여성에게 병역 의무를 부과하는 국가는 극히 일부이며, 남성 중심의 현 군 조직에서 병역 의무를 부과했을 때 위계를 이용한 성범죄가 일어날 수 있기에, 여성에게도 군 복무를 부과하기 이전에는 여성이 평등하고 안전하게 군 복무를 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네가 지금 그 질문을 하는 의도를 안다. 네가 제대로 대화할 마음이 나면 더 자세히 이야기하자'고 말하는 대신, 이렇게 납득할 수 있는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래야 서문 마지막에서 저자가 바란 것처럼 '그동안 애써온 독자'가 마음 놓고 잠깐이라도 쉴 수 있지 않겠는가('페미는 ㅇㅇ병'이라는 챕터에서는 두 페이지가 텅 비어 있고 마지막이자 세 번째 페이지에 '모든 질문에 대답할 이유는 없습니다'라는 한 문장만 적혀 있어 당황스러웠다).

질문이 좋아야 답도 좋겠지만 우문현답도 있지 않나. 질문에 담긴 의도를 간파하는 날카로운 감각, 질문의 허점을 찌르는 간결하고 명쾌한 논리, 차별과 편견에 맞서는 사람들과 아직 그것들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 모두에 대한 저자의 애정이 이 책의 장점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더 예리하고 구체적인 답이 필요하다. 우문현답이 되기에, 저런 질문을 2만 번도 넘게 들어야 하는 독자들의 무기가 되어주기에 이 책의 답은 얕고 뭉툭하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