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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로 꿈꾸자, 꿈을 꾸자

  도道의 옳고 그름(是非), 일의 이익과 손해(利害)는 병립할 수 없습니다. 이해만 따지고 시비를 중시하지 않으면 일을 옳게 처리할 수 없고, 시비만 따지고 이해의 소재를 강구하지 않으면 변고에 대응할 수 없습니다. 권이란 중도를 얻는 것이 중요하고 의란 마땅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니, 중도를 얻고 마땅하게 한다면 하는 일이 모두 옳고 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시비도 명백하지 않고 이해도 분별하게 어려운 것이어서 선택하기 어렵다면, 일의 경중輕重과 완급緩急을 살피면 됩니다. 나라는 근본에 힘써야 하며, 일은 요령을 알아야 합니다. 근본에 힘쓴다는 것은 안을 중요시 여기고 밖을 가볍게 여기는 것이고, 요령을 안다는 것은 두 가지 중에서 중도를 쓰는 것을 말합니다. 일곱 가지 일은 이쪽이 옳으면 저쪽이 그르고, 한편이 유리하면 다른 한편이 해롭지만, 거기에 경중과 완급이 있을 것입니다.


<율곡문답> 115~116쪽, 김태완, 역사비평사

  위 글은 율곡 이이가 책문으로 제시한 글의 일부이다. 책문은 일종의 과거시험 답안지이다. 주어진 문제에 대한 자신의 지식과 견해를 드러내는 글인 것이다. 이 책문의 문제는 간단히 요약하자면, '나라 안의 일곱 가지 큰 현안에 대한 대책을 제시하라'는 것이었다. 율곡은 책문의 서두에 위와 같은 말을 했다.
  이 글을 단지 답안의 일부로만 볼 필요는 없을 듯 하다. 이는 일을 처리하는 보편적인 처리 기준을 제시하는 것으로 봐도 될 것이다. 처리 기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판단의 핵심이 되는 생각, 다시 말해 이념일 것이다. 이념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무엇이 가장 근본적이고 무엇이 가장 시급한 것인가에 대한 가치 판단이라고 하면 될까?
  결국 나에게 무엇이 가볍고 무엇이 무거우며, 무엇이 느슨하고 무엇이 급한가를 세우는 것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될 것이다. 그것이 세워지고 난 뒤에, 세상을 향한 일을 시작함에 오점을 크게 남기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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