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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렁 2024/07/09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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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래의 안부 바다의 마음
- 김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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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09
- : 741
장마철이다. 장마철마다 하늘은 바다가 된다. 이 때 하늘은 한껏 물을 머금고 초긴장 상태다. 이파리만 흔들려도, 기침소리만 들어도 바로 무너져 머금은 물을 후두둑 비로 쏟고 만다. 오늘도 역시 묵직한 하늘이 낮게 드리워져 있다. 얼마나 머금었는지 내리는 비는 끝도 없다.
걱정스런 눈빛으로 밖을 응시하던 나는 빗소리에 섞여 들리는 초인종 소리에 퍼뜩 깨어났다. 나가보니 문앞에 택배가 와 있다. 택배박스는 벌써 여기저기 축축하다. 습기로부터 구하려 서둘러 포장을 풀었다. 김운하 작가의 신작 '고래의 안부 바다의 마음'은 이렇게 장마 한가운데서 내게로 왔다. 책표지는 하늘색 바탕에 큼지막한 고래가 도드라져 있다. 마치 하늘에서 헤엄이라도 치는 것처럼 힘차게 제낀 꼬리는 몸통과 지느러미와 서로 리드미컬하게 어울린다. 금방 넉넉한 마음이 되어 책장을 넘긴다.
저자 김운하는 인문학자이자 소설가다. 저자는 허먼 멜빌의 모비딕에 홀려 고래에 대한 책을 쓰기로 마음 먹었고, 그때부터 고래에 관한 유적지를 찾아 다녔다고 한다. 책 표지에 씌여져 있듯이 이 신작은 '모비딕'을 모티브로 인류세 시대 고래를 찾아 겪은 사유와 여정을 기록한 일종의 기행문이다. 책은 총 22장, 들어가는 말과 나오는 말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은 하나하나 따로 읽어도 함께 읽어도 무리가 없다. 따로 읽으면 하나의 장에서 전하는 텍스트를 단독으로 해석하고 사유하는 기쁨이 있다.
예를 들면 12장 ‘혹등고래의 노래’를 잠깐 보자. 혹등고래의 노래를 채집하던 로저페인이라는 사람의 부고장을 읽으며 12장을 시작한다. 로저 페인은 세계 최초로 고래보호단체를 설립하여 고래를 연구하고 보호했으며 혹등고래의 노래를 일일이 손으로 받아적어 음반을 제작해 빌보드에 올렸다고 한다. 고래가 소통을 위해 노래를 부르는 것을 발표했을 때 사람들은 자신들만 향유한다고 생각했던 문화를 고래도 가지고 있음을 공감하게 되었다고 한다. 내친김에 그간 계획해 온 해양포유류 보호법을 제정하고 상업포경을 금지하는 조약를 협의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인간의 문화
고래의 문화
인간의 노래
고래의 문화
포경산업
포경금지 조약
고래살상 잔혹축제
이렇게 쓰고 보니, 인간은 결코 고래보다 우월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인간만이 만물의 영장은 아니다. 인간은 위대한 만물의 영장이라는 왕관을 벗고, 고래도 인간만큼 자신이 사는 영역과 존재를 인정받고 존중해야 한다. 인간과 고래가 만났을 때, 인간은 자신의 이득을 위해 고래를 마음껏 이용하는 폭력적 지배자로 살아온 지 30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고래에게 가해왔던 잔혹한 폭력을 인정하고 함께사는 지구를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시점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움벨트 세계에서 인간은 인간대로, 모비딕 고래는 그들대로, 그들 각자의 고유하고 독특한 움밸트에서 살고 있다. 모든 생물들이 저마다의 세계 만들기에 참여하고 있다. 생명체는 그런 무한히 다양한 세계들이 공동으로 연결되고 중첩되며, 때론 경쟁하면서 끊임없이 형성되고 재형성되는 세계다.’-
다시 내용으로 돌아온다. 책 속에서 저자는 모비딕-고래-바다-인류세-지구-인간과 상호 관계를 이야기하며 독자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모비딕을 새롭게 읽게 하고, 고래가 무엇인지, 고래가 사는 바다 환경을 생각하게 하며, 고래를 비롯한 비인간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생각하게 한다. 책 후기에서 저자는 이대로 가면 지구 최상의 포식자인 호모사피엔스는 호모디스터비언스가 되어 서식지를 파괴하고 파괴된 서식지에서 살다가 결국 멸망해 사라질 것이라는 씁쓸한 말을 남긴다.
- '저 하늘과 바다에 비하면 나는 얼마나 작은가. 장대함과 장엄함, 경이에 비한다면 나는 내 발밑으로 밀려와 바위에 부딪다 다시 거대한 바다로 스러져가는 파도의 끄트머리에서 흩날리는 물 한방울에 지나지 않는다.'-
지구는 46억년은 생물과 무생물의 변천사다. 지구환경이 바뀔 때마다 지구촌 주민은 수시로 교체되었다. 간혹 수십억년을 살아내는 생명도 있었지만, 거의 모든 생명은 환경을 이겨내지 못했다. 환경이 바뀔 때마다 그 환경에 적응한 주민들만 살아남았다. 고래도 마찬가지였다. 인간이 등장하고, 바닷속 환경이 오염되면서 고래는 더이상 지구촌에서 살아남기 어려워졌다. 겨우 수만년이라는 찰라의 역사를 가진 인간은 인본주의와 만물의 영장이라는 병에 걸렸다. 이제라도 깨어나야 한다. 기후위기, 핵전쟁, 핵폐기물 투척 같은 환경오염은 지구촌을 비가역 방향으로 변화시킬 것이다. 지구를 더이상 변화시키지 말고 유지할 수 있다면 지금 함께 사는 주민들도 안녕할 것이다. 여름이면 만나는 장바도 여전할 것이다. 사실은 이 책은 기행문자 길지 않은 내용이지만 많은 깊은 것들을 담고 있는 철학책이자 인류를 위한 지침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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