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철학책이다. 시간과 공간에 따라 출렁이는 내면을 보여주는, 지식과 사유로 조각된 헤아릴 수 없는 내면의 깊이를 느끼게 해주는, 인생과 인간에 대한 이해를 더해주는. 특히, 저자 스스로 글쓰기 운명을 받아들이고 심취하고 중독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책을 다 읽었음에도 한마디 말도 할 수 없었다. 마치 무의식 아니 저 깊은 미로, 타르타로스를 헤메듯,알 수 없고 두려운 심연에 빠져 허우적대다 겨우 풀려난 것처럼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파왔기 때문이다. 도대체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
저자는 자살금지법으로 인산재단 창작기금을, 죽은 자의 회상으로 문학사상 등단을 한 이래, 실로 오랜만에 범상치 않은 소설을 내놓았다. 등단 때부터, 아름다움과 인간다움에 대한 독특하고 자유로운 생각을 내놓은 저자는 이번 소설 역시 흔치 않은 형식과 서술로서 독자를 설레게 하였다.
저자는 작가로서 오직 다른 삶을 꾸리고 싶다고 절규하고 있다.
‘나는 같은 것을 쓰고 싶지 않다. 남과 같은 것을 쓰고 싶지 않다. 나만의 새로운 것을 쓰고 싶었다. 이제껏 써왔던 것들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나만이 쓸 수 있는 것을 내놓고 싶었다. 남과 다르게. 오직 그것만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다. 도전하는 삶. 변화를 추구하는 삶. 머무르지 않는 삶.’
이 소설은 2부 44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장은 짧게는 단 몇줄, 길게는 10여 페이지 이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길이는 사유의 분방함만큼이나 자유로움을 시각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책속의 화자는 별안간 제주도로 가게 되어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있지만, 제주도라는 공간은 그저 구실일 뿐이다. 책속에서 화자는 시간과 공간을 자유로이 넘나든다. 현재에서, 과거로 그리고 미래로. 삶, 예술, 시간, 기억, 운명을 누에가 고치를 짓고 물레가 실을 풀어 베틀에서 베를 지어내듯 엮고 있다. 쓰고, 써야만 하는, 쓰고야 말겠다는 화자의 의지는 우연까지도 운명 삼아 마침내 저 깊은 내면에 새겨진 천형이나 되는 양 굳건하다. 전작인 ‘네번째 책상 서랍 속의 타자기와 회전목마에 관하여’이 지독한 책읽기와 글쓰기를 노래했다면 이 책은 보다 더 전에 저자가 글을 쓰기로 쓸 수밖에 없는 운명을 마치 고단한 수고를 멈출 수 없는 물레마냥 고분고분 받아들여 따를 뿐이라 말하고 있다. 뽑아라, 뽑아라 물레야, 실을 뽑아 오늘은 어떤 무늬의 베를 걸어볼까, 환상한줌, 현실 한줌, 과거를 한 꼬집 그리고 우연을 수놓아 베를 펼쳐낸다. 시공을 넘나들며 삶과 예술을 그리고 고귀한 가치를 시연하여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이 책은 이쁜 우리말을 참으로 많이 싣고 있다. 제주도의 아름다운 자연을 감각적인 단어로 보여주고 느끼게라도 하듯 순수한 우리말들을 보석처럼 박아놓았다. 캄캄한 하늘에서 별을 찾듯, 하나하나 찾아 읊조리는 재미도 쏠쏠하다.
책을 여는 첫문단이다. 글을 쓰는 시간이 도래하였음을 마치 기다리던 연인을 멀리서 발견한 기쁨과 황홀함을 수줍음으로 좆는 연인의 몸짓으로 묘사한다.
‘거실에서 책을 읽는데 어느새 책의 새하얀 페이지에 그림자가 어리기 시작한다. 책을 내려놓고, 고개를 들어 사위를 살펴본다. 투명하던 거실 바닥엔 창가 쪽 일부만 제외하곤 암청색 그림자가 물감이 번지듯 번지고 있다.’
어둠이 닥치자 마치 낮동안 잠들어 있던 손가락들이 그 생기를 되찾고 할 일이 무엇인지 알고 눈달린 손가락처럼 저절로 알기라도 하듯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끝없는 두드림은 끊이지 않는 문장을 만들고 이야기를 낳는다. 눈없는 손가락이 육체의 굴곡을 더듬어 아이를 잉태하듯 저자는 밤과의 사랑으로 글을 잉태하고 이야기를 키웠다. 작가의 손길은 그래서 관능적이다. 적막같은 어둠과 고독의 밤은 저자에게는 오히려 생산의 시간인 셈이다. 글자와의 향연, 산고의 고통을 온몸으로 받아 그는 한권의 책을 낳았다. 숱한 밤을 지새우며 한 장을 채 넘기지 못할 때도 있었을 것이다. 그때마다 말할 수 없는 고통에 시달렸으리라, 몽올몽올 아른거리며 잡히지 않는 오묘한 단어들, 퍼즐을 맞추듯 이들을 꿰어 형언할수없는 아름다움으로 만드는 재미에 고통을 느끼지도 못했으리라. 하지만 밤은 날마다 찾아왔으므로 마침내 작가는 글을 완성하고 책을 내놓을 수 있게 되었다. 밤마다 달은 작가를 꿈꾸게 하였다. 제주도로 데려가 그 시절을 불러내고, 불려나온 기억은 울고 웃고 황홀하고 처절하게도 만들었다. 꿈인지 환영인지 모른 체 작가는 써내려갔다. 달을 채워 아이를 내놓듯 작가는 책을 세상에 태워냈다.
이 책은 소설이다. 산문적 소설, 신변잡기도 아닌 에세이도 아닌 시도 아닌 소설. 운율과 운을 띄워주는 그의 글들은 마치 시이기도, 산문이기도, 에세이이기도 하여 마침내 모든 형식을 담고 있다.
이 글은 인생이다. 가차 없는 인생을 담고 있다. 변주, 허구, 허상, 덧없음. 불안, 고통, 사라짐. 죽음.
이 고난 뿐인 인생에서 줄곧 작가는 굳건한, 끊어지지않을, 천명으로서의 글쓰기를 켜고 있다. 각각의 줄을 타고 이리저리 넘나들며 곡을 짓는 현악기처럼 그는 인생을 우연, 시간, 예술, 진리, 기억, 사랑의 6줄을 오가며 사랑과 운명의 현을 켜는 연주에 비한다.
이 철학속에는 나는 무엇을 말할 수 있으랴, 앎에 사랑이 곧 인생임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앎의 역사가 바로 인류의 발길이었음을 인정한다. 그리고 이제는 그 앎의 향연으로 걸어들어갈 수 밖에 없음도. 그 속에서 카프카도 장자도 더듬어 볼 수 있으리라.
‘모든 그리운 것들에는 어딘가 신산스러운 면이 있다.’
그 자체가 인생이고 사랑이며 동시에 고통이기 때문이다. 시작도 끝도 그 경계가 모호한 인생. 다만 운명만이 웃고 있을 뿐이다. 죽을 줄 알고도 날아드는 나방처럼 우리는 운명을 향해 날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