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출판사에서 서평단에 뽑혀서 책을 제공받아 읽었습니다.
제목이.
죽이고 싶은 엄마에게, 라서.
엄마를 죽이고 싶었던 적은 없다. 단 한 번도. 너무나 고생을 하며 살아 온 엄마를 안쓰러워하며 살았고, 그 고생을 같이 들어주지 못한 아버지를 원망하며 살았다. 나이가 들고 나서는 어머니와 나는 다른 존재일 뿐, 천선란 작가님의 북토크에서 들었던 말처럼,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한 차에 타서 어딘가로 향하는, 조별과제를 하는 사이일 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제서야 원망도, 서운함도, 아쉬움도 다 사라졌다. 끈질기게 붙어있던 탯줄이 그제서야 떨어진 기분이 들었다.
엄마.
어느 언어권에서든 가장 먼저 내뱉는 말이 아닐까. 음음음, 하는 소리를 내다가 어느덧 음마, 엄마까지 발화를 하는, 가장 가까이에서 나를 먹이고 재우고 입혀주는 존재가 '엄마'라는 것을 알게 되는. 한시영 작가의 어머니는 알콜 중독자였다. 혼자서 아이를 키우려니 힘들어서 술을 마실 수도 있었겠지만, 그 술이 일주일, 아흐레, 열흘이 넘도록 날마다 마시는 '장취'라면, 그래서 집을 나가 모텔이나 고시원을 빌려 그 안에서 쭉 술만 마신다면.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는 엄마를 기다렸고, 중학생때는 정신병원에 입원한 엄마에게 필요한 물건을 가져다주려고 교복을 입은채 들락거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어머니를 놓지 않았다.
나였다면.
이 책을 읽은 독자라면 누구나 생각하게 될 질문.
나였다면 과연 어머니를 끝까지 돌볼 수 있었을까.
그저 내버리고 싶은 마음이 왜 없었을까. 그렇지만, 술에 취하지 않았을 때 살뜰히 챙기고 보살폈던 엄마가, 내게 주었던 온기에 그럴 수 없었을 것 같다.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조승리), <예순 살, 나는 또 깨꽃이 되어>(이순자), <부스러졌지만 파괴되진 않았어>(김가을) 이런 책들이 떠올랐다. 읽고 쓰는 삶을 놓치지 않고 자기 삶을 건져 올린 사람들의 에세이가.
수도관이 터진 수도꼭지. 그게 저 같아요. 수도관이 터졌으니까 내가 쓰고 싶을 때 쓸 수 없어요. 흘러나오는 대로 써요. 제가 트라우마를 겪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할머니의 트라우마가 엄마에게, 그리고 그것이 제게 이어졌다고 할 수 있을까요. 전쟁 중 돌쟁이 아이와 이후에 다 큰 스물세 살짜리 아들을 잃은 할머니는 엄마를 어떻게 키웠으며, 그 시대는 할머니의 몸과 마음에 어떤 그을음을 남겼던 걸까요. 어떠했기에 엄마는 저렇게 된 거죠. 술을 먹는 여자. 그러다 딸을 낳은 여자. 그래도 살아보려고 했던 여자. 여자나 엄마라는 것으로 한정 지을 수 없는, 그런 것에 갇힐 수 없었던 사람.(12-13)- P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