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bigsister722님의 서재
  • 사자왕 형제의 모험
  •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 11,700원 (10%650)
  • 2015-07-10
  • : 32,257

(스포일러 포함)


1983년 초판 1쇄 발행

2018년 개정3판 8쇄 발행.

1973년 스웨덴에서 출판.

우리나라에서 출판하기까지 10년.

책 뒤에 실린 '여름의 소년들에게'를 쓴 작가 한강은 이 책을 1980년에 읽은 것으로 기억했단다.

아무래도 광주의 5월, 여름을 건너오지 못한 소년들과 사자왕 형제가 겹쳐서 그렇겠지.

작가 한강이 쓴 '여름의 소년들에게'의 줄거리를 옮기자면

그건 평범한 동화책이 아니다. 아이들을 위한 책으로서는 놀랍게도 처음부터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부엌의 침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픈 소년 칼에게, 그를 사랑하는 형 요나탄이 말한다. 네가 죽으면 하얀 새가 되어 나에게 돌아올 거야. 나는 너를 금방 알아볼 수 있을 거야. 그러나 얼마 뒤 집에 불이 나고, 칼을 업고 뛰어내린 요나탄이 먼저 세상을 떠난다. 과연 하얀 새가 되어 창가로 날아온 요나탄이 들려준 말대로, 뒤이어 병으로 숨을 거둔 칼은 낭기열라라는 아름다운 세계에서 건강한 몸으로 다시 눈을 뜬다. 그러나 그곳은 아름답기만 한 세계가 아니다. 들장미 골짜기의 텡일이라는 무자비한 독재자가 괴물 카틀라의 힘을 등에 업은 채 사람들을 지배하고 핍박한다. 이웃한 벚나무 골짜기에서 뜻있는 사람들이 모여 그에게 맞서는데, 요나탄은 '사자왕'이라는 그곳에서의 별명대로 용감하고 순정하게 자신의 몫을 다해 싸우는 중이다. 이 책에서 가장 먼저 나를 사로잡은 것은, 그 싸움의 과정에서 연약하고 겁 많은 칼이 서서히 이 작품의 진정한 주인공, '사자왕 칼'이 되어 가는 모습이었다. 일인칭 화자인 칼이 너무나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았으므로, 처음부터 나는 거의 무방비 상태로 그를 이해했다. 형에 대한 그의 절대적인 사랑과 믿음,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감탄, 그리고 두려움과 떨림까지.

거기에 더해, 칼이 관찰하는 독재자 텡일의 모습, 그가 조종하는 살인의 화신 카틀라, 그에 맞서 연약한 사람들이 연대하는 과정이 어째서인지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이들이 결국 승리하기는 하지만, 그 싸움의 과정에서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되고 만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 눈물을 흘리며 슬퍼한다. 그러나 오직 한 사람, 반군의 지도자 오르바르만은 울지 않는다. 그 대목을 읽으며 내가 느꼈던 불길한 예감을 기억한다. 그 어두운 예감과 폭력의 기억으로 그늘진-그러나 동시에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세계, 낭기열라에서 소년들이 다시 죽음의 형식으로 함께 떠나가는 마지막 장면을 읽다가, 어느새 해가 져서 캄캄해진 내 방의 서늘한 벽에 기대앉아 오래 울었던 것을 기억한다. 알 수 없었다. 어떻게 그들은 그토록 서로를 믿고 사랑하는가? 그들의 사랑을 둘러싼 세상은 왜 그토록 아름다우며 동시에 잔인한가? (333-335)

그러나 이제 삼십여 년이 흐른 뒤 다시 읽게 된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불꽃에 손바닥을 덴 것처럼 놀라며 깨달았다. 열두 살의 내가 어두워져 가는 방의 벽에 기대 앉아 이 책을 쥐고, 무엇이 내 눈과 목구멍을 뜨겁게 하는지도 명확히 알지 못한 채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들의 의미를. 그 질문들이 여전히 내 안에서 생생히 살아 어른어른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그들은 그토록 사랑하는가? 그들을 둘러싼 세상은 왜 그토록 아름다우며 동시에 폭력적인가? 그 열두 살의 나에게, 이제야 더듬더듬 나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바로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가 절망하는 거라고. 존엄을 믿고 있기 때문에 고통을 느끼는 것이라고. 그러니까, 우리의 고통이야말로 열쇠이며 단단한 씨앗이라고. (339-340)


어쩌면 바로 이 장면을 읽으면서 나는, <소년이 온다>를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들장미 골짜기의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하러 떠나는 요나탄이 동생에게 하는 이 말이

바로 5월의 광주로 연결된다는 것을,

그 아픔으로 데려간다는 것을,

이 책을 읽는 어른이라면 누구나 다 눈치채지 않을까.

그래서 1982년 린드그렌 할머니를 만나러 간 역자 김경희 씨에게

린드그렌 할머니는 마티아스 할아버지처럼 맑고 다정한 눈으로 이렇게 말을 했겠지.

(독재정권에 의해 짓밟힌 소식은 어쩌면 린드그렌도 알고 있었을지도...)


나는 무엇 때문에 요나탄 형이 그처럼 위험한 일을 해야 되느냐고 물었습니다. 기사의 농장 벽난로 앞에 앉아 편안히 살면 안 될 까닭이 뭐란 말입니까? 그러나 형은 아무리 위험해도 반드시 해내야 되는 일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어째서 그래?"

내가 다그쳤습니다.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지. 그렇지 않으면 쓰레기와 다를 게 없으니까." (86)


판타지 구조, 모험 이야기라 푹 빠져들어 읽을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글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아름다운 자연에 대한 묘사가

이 책에는 가득하다.

아직 <우리가 이토록 작고 외롭지 않다면>을 다 읽지 못했지만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자신의 첫 아이를 키운 경험으로

아이에게 자연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크게 깨달았다.

그래서 그녀의 작품에 아름다운 자연에 대한 묘사가 종종 나오는 것 같다.

마침내 나는 '벚나무 골짜기'에 와 있는 것입니다. 골짜기는 온통 벚꽃으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새하얀 벚꽃과 풀빛 잔디가 한데 어우러진 골짜기, 그 한가운데를 흐르는 강문은 마치 은빛 리본 같았습니다. 나는 왜 여태껏 그 경치를 못 보았을까요? 비탈진 오솔길에 말없이 서서 아름다운 경치를 홀린 듯이 바라보았습니다.

(...)

우리가 걸어가는 오솔길은 바람에 흩날려 떨어진 벚꽃들로 새하얗게 뒤덮여 있었습니다. 머리 위로 벚꽃이 날아와 내려 앉았습니다. 풀빛 잔디 위로 벚꽃이 새하얗게 뒤덮인 오솔길은 정말 멋있었습니다. (41-42)


마지막은......

마지막 부분을 읽고 눈물이 터져나와서 소파에 앉아 한참을 훌쩍거리며 울었다.

이 세상의 아름다움과 폭력성을 아이들도 읽을 수 있도록 써냈지만

어른을 위한 책이기도 하다. 어쩌면 어른이라서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부분도.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