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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잠님의 서재
  • 이제부터 위험하면 뻐끔거려
  • 이적온
  • 10,800원 (10%600)
  • 2026-02-23
  • : 105

이적온 시인의 『이제부터 위험하면 뻐끔거려』는 현대 사회의 '스펙터클'과 '정동적 무감응'이라는 주제를 날카롭게 비판하며, 시의 윤리적 역할을 재고하게 한다. 시집은 사고 현장을 '멍청이 통제'로 비유하거나, 위험을 '뻐끔거림'으로 치환하는 등, 이미지와 언어가 소비되는 방식에 대한 통렬한 성찰을 담고 있다. 특히 '삼중 추돌'에서 '적기'의 다의성을 통해 현대 예술과 사회현상이 어떻게 하나의 질주로 수렴되는 폭력적 단순화를 비판하는 점은 인상 깊다. 시인은 쉬운 이해와 단선적 해석을 거부하고, 오히려 의미의 복수성과 긴장을 기꺼이 감수하려는 태도를 통해 독자에게 사유의 공간을 제공한다. 이는 단순히 어려운 시를 쓰겠다는 의지를 넘어, 무감각해진 현대인의 감각을 일깨우고,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윤리적 감응을 회복하려는 시인의 간절한 시도로 읽힌다. 'Fle(a)sh'에서 '비장소'를 '분산형 집회'의 공간으로 재해석하며 임시적이지만 다정한 연대를 모색하는 부분은, 냉혹한 현실 속에서도 따뜻한 관계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는 시인의 시선을 보여준다. 이 시집은 현대 사회의 복잡한 면모를 시적인 언어로 해부하며, 독자에게 깊은 질문을 던지는 동시에 새로운 감각의 가능성을 탐색하게 한다.

폐업한 가게에 장난 전화를 건다
허기처럼 불거지는 목소리는
거울을 뒤집어 놓고 믿어버리면 그만
- P51
그 문장은 나였고 피부를 대신한 그늘이었고
내 영혼이 세기에 걸쳐 되뇐 단 한 줄의 음계였는데
책을 덮으면 온데간데없었다
들려오는 언어를 무참히 깨달았다- P59
내가 말보다 칼을 먼저 발음하자 할아버지는 내게 조각칼
을 쥐여 주었다. 날이 사포만큼 무디고 손잡이가 손가락에
맞게 파인 칼이었다. 할아버지와 나는 손을 겹쳐 잡고 창틈
으로 번지는 빛을 깎았다. 상아에 손톱자국이 남지 않게끔
엄지에 힘을 빼고 사막의 모래를 어루만지듯 부드러이 밀어
내는 법을 배웠다. 빛이 잘려 나간 자리에 어떤 기억이 조각
되었다. 그게 젊은 너였음은 나중에 알았다- P64
기지개 켜듯
환해지고 마는 상처라니
빛 그물을 짜는 맨발이라니
눈부신 고통이라니- 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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