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상호 시인의 『오고가고 수목금』은 언어의 가장 깊은 곳에서 길어 올린 투명한 샘물과 같았습니다. 시집을 읽는 내내, 꾸밈없고 솔직한 시인의 목소리가 귓가에 조용히 울려 퍼지는 듯했습니다. 마치 낡은 일기장을 한 장씩 넘기듯, 시인의 삶의 단면들과 그 속에서 피어나는 사유들이 고스란히 독자에게 전해지는 경험이었습니다. 특히 ‘생산직’이라는 시에서 숲이 나무를 일으켜 세워 시간을 만들고, 도끼질에 달이 몇 토막 나는 이미지들은 삶과 노동, 그리고 자연의 순환에 대한 시인의 깊은 통찰을 엿볼 수 있게 합니다.
이 시집은 상실과 고독이라는 보편적인 감정을 시인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풀어냅니다. '멀리서 나비'는 '저 세상에서 날아'와 '그의 등에 오래 머물'다가 떠나는 나비를 통해, 떠나보낸 이에 대한 그리움과 재회에 대한 갈망을 애틋하게 표현합니다. 시인은 이러한 감정들을 직접적으로 호소하기보다, 자연물과 일상적인 풍경에 스며들게 함으로써 더욱 큰 공감과 여운을 불러일으킵니다. 또한 '골판지'를 해부하여 뼈가 비어 있음을 발견하고, '흉터마다 계단'을 욱여넣는 시인의 시선은 삶의 고통과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정직하게 마주하려는 태도를 보여줍니다.
『오고가고 수목금』은 그렇게, 삶의 무게와 아름다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시집이었습니다. 시인의 언어는 과장되지 않았지만, 그 속에 담긴 진정성은 독자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남깁니다. 마치 ‘저녁 무렵 커피는’에서 “아쉬운 것들과 함께 돌아다니고 싶었다”고 고백하는 것처럼, 시인은 우리 모두가 품고 있는 보편적인 감정들을 섬세하게 어루만져 줍니다. 이 시집을 통해 우리는 삶의 굴곡진 길 위에서 만나는 모든 오고 가는 것들에 대해 깊이 성찰하고, 시인처럼 담담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삶을 포용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가만히 헤어질 의무가 있다- P62
갈라진 골목을 뒤꿈치라 부른다
새벽도 오래 걸었으니 분명 저런 발을 가졌을 것이다- P82
이 생은 늦었는데 동백은 멀뚱멀뚱 동백 뒤 향기는 가만가만 그 뒤의 놀란 밤이 쉽게 일어나지 못한다. 도대체가 이곳 조바심엔 속도가 없다. 앞차는 깨끗하게 거기 서 있다
- P93
호수는 내용을 숨겼어요
끝까지 봐도 끝을 모르겠어요- P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