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문제를 풀다보면 꼭 이런 상황에 놓일 때가 있다. 내가 생각하는 답은 이건데, 정답은 저거일 것 같은 상황. 그런데 정답일 것 같은 답을 적었다가 틀렸을 때의 좌절은 더 크다. 내가 나를 믿지 못했다는 자책.
박설희의 시집이 그렇다. 우리가 삶의 방향을 잃고 잠시 헤맬 때 읽으면 정답은 아니어도 내가 쓸 수 있는 답을 알려주는 그런 시집이었다.
그 바위를 돌아
왼쪽으로 맑고 고요한 내를 끼고
목적지가 어디였는지조차 잊어갈 무렵
너른 공터에 햇살 가득한
막다른 그곳- P95
금가고
갈라지고
부서져야
자격을 얻는다
발 딛는 곳마다 신들이 있다- P88
나는 자꾸 창밖으로 도망친다
한 음절 한 음절 힘겹게 몸 밖으로 밀어내는 소리들을
온몸이 귀가 되어 듣는다- P63
우박에 찢기고 비바람에 휘청여도
한밤중에도 꺼지지 않는 별빛, 다정하게 오가는 햇발, 귓
속말로 다독이는 봄비
그와 나, 올봄을 처음 맞이하는 첫물
푸른 잎맥 같은 하루하루 지으며 자라는 중인데- P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