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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위의 사색자

"아뇨. 센틸리언은 고삐 풀린 알고리즘이에요. 사람들이 원하는것처럼 보이는 걸 점점 더 많이 제공할 뿐이죠. 그리고 우리는, 그러니까 나 같은 사람들은, 바로 그 점이 문제의 근원이라고 생각해요. 센틸리언은 우리를 조그만 거품 속에 가뒀어요. 그 속에서 우리가보고 듣는 것들은 전부 우리 자신의 메아리예요. 그래서 점점 더 기존의 믿음에 집착하고, 자신의 성향을 점점 더 강화해 가는 거죠. 우린 질문하기를 멈추고 뭐든 틸리가 판단하는 대로 따르고 있어요.
세월이 흐를수록 우리는 점점 더 고분고분한 양처럼 변해 가고,
털도 점점 더 복슬복슬해져요. 센틸리언은 그 털을 깎아서 더 부자가 되고 말이죠. 하지만 난 그렇게 살기 싫어요."- P56
"우리는 이미 오래전에 의식을 전자(電子)의 영역으로 확장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자아를 두뇌 속으로 다시 욱여넣기가 불가능합니다. 당신들이 파괴하려고 했던 당신의 전자 복제판은 문자 그대로 실제의 당신입니다.
이렇게 전자적으로 확장된 자아 없이는 살 수가 없게 된 이상, 당신들이 센틸리언을 무너뜨려 봤자 금세 다른 대체재가 등장해서 우리 자리를 차지할 겁니다. 이미 늦었다. 이겁니다. 거인은 이미 오래전에 램프에서 탈출했어요. 처칠이 이런 말을 했다지요. ‘건물을 만드는 것은 우리이지만, 나중에는 그 건물이 우리를 만든다. 우리는생각하기를 돕는 기계를 만들었지만 이제는 그 기계가 우리를 대신해서 생각을 한다. 이겁니다."- P71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방 천장의 대들보에 목을 맨 아버지를 발견했다. 멍한 기분으로 아버지의 시신을 내리는 동안, 나는 아버지와 아버지가 평생 사냥한 요괴들이 서로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들었다. 양쪽 다 이미 사라져서 돌아오지 않을 낡은 요술의 힘으로 연명하는 존재였고, 그 요술 없이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알지 못했으니까.- P93
하지만 옆에게 모진 낙인을 찍고 싶지는 않았다. 낙인찍는 것은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지 않아도 되는 이들의 특권이므로.- P97
"이 증기와 전기의 새 시대에, 이 거대한 도시에서, 빅토리아피크에 사는 사람들을 빼면 자기 본래 모습으로 사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을까?" - P100
나한테는 양끝을 다 태울 양초가 없어. 커피 스푼으로 수명을 계산할 일도 없을 거야. 욕망을 잠재울 샘물도 없어, 왜냐면 죽은거나 다름없이 얼어붙은 내 일부를 뒤에 남겨 두고 왔으니까. 지금 나한테 있는 건 내 삶이야.
"삶이란 모름지기 실험이에요."- P132
내가 지금 느끼는 기분이 바로 그거야. 마음이 탁 트인 기분, 만사가 태평한 기분, 어디에든 적응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말이야. 그래, 내삶은 이제 비로소 진짜 실험이 됐어. 다음엔 뭘 할 수 있을까? 뭐든지 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여기까지 오기 전에 난 먼저 내 담배를 다 피워 버려야 했어.
나한테 일어난 일은 ‘상태 변화‘였어. 내 영혼이 담배 한 갑에서 담뱃갑으로 바뀌었을 때, 난 성장한 거야.- P135
이것이야말로 정상적인(regular) 세상의 모습이다. 명쾌함도, 구원도 없다. 모든 합리성의 끝에는 그저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과 품고살아가야 할, 그러면서 견뎌야 할 믿음뿐이다.- P305
빛나는 팔, 웃음소리, 신들의 음식. 우리 기억은 그렇게 압축되고통합된 끝에 반짝이는 보석이 돼서 머릿속의 한정된 공간에 박힌단다. 하나의 장면은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기호로 바뀌고, 긴 대화는문장 한 줄로 줄어들고, 하루는 덧없이 사라지는 즐거운 느낌으로 농축되지.
시간의 화살은 그 압축의 정확성을 앗아간단다. 스케치가 되는거야, 사진이 아니라. 기억은 곧 재현이란다. 그것이 소중한 까닭은 원본보다 나은 동시에 원본보다 못하기 때문이지.- P312
"나는요. 우리 가족이 카누를 타고 끝없는 태평양으로 나선 폴리네시아 사람들이나 아메리카 대륙까지 항해한 바이킹의 전통을 이어 받았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져요. 우린 언제나 배에서 살았거든요. 지구도 마찬가지예요. 우주에 떠 있는 배 한 척."- P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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