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이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아마도 가장 먼저 내가 어디에서 태어났는지, 끔찍했던 어린 시절이 어땠는지, 우리 부모님이 무슨 직업을 가지고 있는지, 내가 태어나기 전에 무슨일들이 있었는지와 같은 데이비드 코퍼필드식의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이야기들에 대해서 알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 난그런 이야기들을 하고 싶지가 않다. 우선 그런 일들을 이야기하자니 내가 너무 지겹기 때문이고, 그렇게 시시콜콜하게 이야기했다가는 부모님이 뇌출혈이라도 일으킬 것 같기 때문이다.- P9
난 그녀가 좋았다. 셀마는 큰 코를 가지고 있었고, 손톱은 하도물어뜯어서 애처로울 정도인 데다가, 터무니없이 커다란 브래지어를 하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연민이 느껴질정도였다. 그렇지만 내가 그녀를 좋아하는 이유는 아버지가 교장인데도 셀마가 잘난 척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자기 아버지가 얼마나 엉터리인지를 알고 있었을까.- P12
펜시는 나쁜 놈들이 우글거리는 곳이었다.
많은 아이들이 부유한 가정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온통 사기꾼들 천지였다. 원래 학비가 비싼 학교일수록 사기꾼들이 들끓는법이다. 이건 농담이 아니다. - P13
사실 난 그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나름대로 석별의 정을 느껴보려고 애쓰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제까지 나는 떠난다는 것조차 느끼지 못한 채로 여러 학교들을 떠나왔다. 그런 것이 싫었다. 슬픈 작별이든, 기분이 좋지않은 이별이든 간에, 내가 그곳을 떠난다는 사실은 알고 싶었다. 그렇지 않으면 기분이 더욱 나빠질 테니까 말이다.- P13
「인생은 시합이지. 맞아, 인생이란 규칙에 따라야 하는 운동경기와 같단다」「예. 선생님. 저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시합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시합은 무슨. 만약 잘난 놈들 측에 끼어 있게 된다면 그때는 시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건 나도 인정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측에 끼게 된다면, 잘난놈이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그런 편에 서게 된다면 그때는 어떻게 시합이 되겠는가? 아니. 그런 시합은 있을 수 없다.- P19
어른들은 자신들의 말이 늘 맞다고 생각하니까. 난 그런 일에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어른들이 내 나이에 맞는행동을 하라고 말하는 것은 지겹기까지 하다. 때로는 나도 나이보다 조숙하게 행동할 때도 있다. 그건 정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어른들은 절대로 아무것도모르니까.- P20
난 선생에게 그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선생은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선생하고는 관계없는 일이었고 말이다. 내가 엘크톤 힐즈를 떠난 가장큰 이유는 주위에 가식적인 인간들만 우글거렸기 때문이었다.
그게 전부였다. 이를테면, 교장인 하스 선생은 이제까지 만났먼 사람들 중에 가장 끔찍한 인간이었다. 서머 교장보다 열 배는 더 고약했다. 예를 들면 하스 교장은 일요일마다 학교를 찾아오는 학부모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며 돌아다니곤 했다. 지독할 정도로 사근거리면서 간혹 만만하게 보이는 학부모들을 제외하고 말이다. 그 교장이라는 인간이 내 룸메이트의 부모에게어떻게 했는지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내 말은 학생의 엄마가 뚱뚱하거나, 촌스러워 보인다거나, 아버지가 어깨가 넓고낡은 양복을 걸치고 있거나, 남루한 검은색이나 흰 구두를 신고 있으면, 하스 교장은 그저 간단한 악수만 하고 지나가거나, 억지 미소만 지은 채 지나가 버린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다•른 학부모들과는 30분이나 한 시간 가량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그건 도저히 눈 뜨고 볼 수 없는 일들이었고, 도저히 참을 수없는 광경이었다. 엘크톤 힐즈는 생각만 해도 끔찍한 곳이었다.- P26
자신은 언제나 예수님에게 이야기를 하는데, 운전할 때조차 그렇다고 말했다.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지금 내 눈앞에는 일단 기어를 넣으면서 예수님께 좀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게 해달라고 기원하는 엄청난 사기꾼이 서 있는 것이다. - P30
내가 제일 좋아하는 책은 이처럼 때때로 웃음을 주는 내용이다.
"나는 고전소설들을 많이 읽었다. 『귀향』과 같은 책들을 좋아하고, 많은 전쟁소설과 미스터리물도 읽었다. 하지만 그 책들은그렇게까지 내게 강한 인상을 주지는 못했다. 정말로 나를 황홀하게 만드는 책은, 그 책을 다 읽었을 때 작가와 친한 친구가되어 언제라도 전화를 걸어, 자기가 받은 느낌을 이야기할 수있었으면 좋겠다는 느낌을 주는 책이다. 물론 그런 일은 그렇게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니었다.- P32
그는 노상 내게 부탁이라는 걸한다. 잘생겼다고 하는 놈들이나, 자기가 잘났다고 우쭐대는그런 인간들은 늘 남에게 무언가를 부탁하곤 한다. 그건 스스로 자기 자신에게 홀딱 빠져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도 자신의 매력에 꼼짝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들의 부탁은 무엇이라도 거절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참웃기는 일이다.- P44
그에게 무슨 말을 해댔는지 뚜렷하게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고 싶으면 어떤 여자하고라도 그럴 수 있는 놈이 네놈이다. 그 애가 킹을 뒷줄에 늘어놓기만 하는 걸 신경조차 쓰지 않는 놈이라고 말했던 것 같다. 또 그런 걸 아랑곳하지 않는 이유는 네놈이 멍청하기 짝이 없는, 천하에 둘도 없는 바보이기 때문이라는 말도 했던 것 같다. 그는 자신을 바보라고 부르는 것을 무척 싫어했다. 무릇 바보들은 자신들이 바보라고 불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법이다.- P65
그 스케이트는 엄마가 이틀 전에 보내준 것이었다. 그 사실이 내 기운을 쑥 빼놓았다. 스폴딩 운동용품점에들어가서 점원에게 온갖 질문을 다 하면서 이 스케이트를 샀을엄마의 모습이 눈에 선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난 또 퇴학을 당하고 만 것이다. 이 사실이 날 아주 슬프게 만들었다. 엄마가사준 스케이트가 비록 내가 원한 경주용 스케이트가 아니라 하키용 스케이트이기는 했지만. 누군가 내게 선물을 줄 때마다 결국에 가서는 이렇게 슬픈 결과를 만들고 마는 것이다.- P75
작고 귀여운 엉덩이를 보기 좋게 흔드는 것이었다. 그녀는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정말이었다. 우리가 자리로 돌아갔을 때 난 그 여자에게 반쯤 빠져 있었다. 여자들은 정말 그랬다. 여자들이 예쁜 짓을 할 때마다 아무리 볼품없고, 멍청하더라도 어느 정도는 반하게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럴 때면 남자들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모르게 되고 마는 것이다. 세상에, 여자들이란. 그들은 정말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여자들은 정말 그렇게 할 수 있다.- P102
난 그의 연주를 좋아하긴 하지만, 때로는 피아노를 엎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한다. 왜냐하면, 상류층이 아니면 상대도 하지 않는 그 인간처럼 음악도 그렇게 들릴 때가 있기 때문이다.- P111
분명히 말하지만, 내가 만약 피아노를 연주하거나 배우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저런 바보 같은사람들이 나를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더 끔찍한 일일것 같다. 저들이 내게 박수 갈채를 보내오는 것조차 싫을 것이다. 사람들이란 늘 별것도 아닌 일에 박수를 치곤 하니 말이다.
내가 피아노 연주자라면, 난 옷장 속에 들어가 연주할 것이다.- P116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어니는 정말 속물이라는 점이다. 그러면서도 이상하게 연주가 끝났을 때 그가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자신의 연주가 제대로 된 것인지, 틀린 것인지조차 알지 못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건 완전히 그의 잘못만은아니다. 일부 저렇게 열렬히 환호를 보내고 있는 멍청이들의 책임도 큰 것이다. 기회만 생기면 어떤 사람이라도 망쳐버리는 족속들이니 말이다.- P116
정말 환장할 노릇이다. 전혀 반갑지도 않은 사람에게 늘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같은 인사말을 해야 한다는 건 말이다. 그렇지만 이 세상에서 계속 살아가려면, 그런 말들을 해야만 한다.- P120
물론 문제는 나한테도 있었는데, 나는 정말 그만둬 버린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나로서는 어쩔 수 없다. 상대방이 정말로 하고 싶어하지 않는지, 여자가 겁을 잔뜩 집어먹고 있는 건지, 아니면 그대로 일이 벌어졌을 때 모든 책임을 내게 떠넘기려고 그러는 건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그만둔다.
결국 문제는 내가 여자들을 안됐다고 여기는 점이다. 대부분의여자애들은 너무나도 바보 같기 때문이다. 잠시 동안 끌어안고있으면, 그 애들은 모두 정신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이성이라는 건 몽땅 날아가 버리고 흥분만 남는 모양이었다.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난 여자들이 그만두라고 하면 그만둔다. 그애들을 집에 데려다주고 나서 그냥 하고 말걸 후회하게 되지만, 언제나 똑같이 그렇게 돼버리고 만다.- P127
하지만 그녀의 옷을 옷걸이에 걸어놓을 때는 괜히 그녀가 서글프게 느졌다. 이 옷을 사러 가게에 들어갔을 때는 아무도 그녀가 창녀인 줄 몰랐을 것이다. 옷을 팔았던 점원은 아마 그녀가 평범한여자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 사실이 내 기분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왜 그런지는 알 수가 없었다.- P131
망할 놈의 돈 같으니라구. 돈이란 언제나 끝에 가서 사람을 우울하게 만들어버린다.- P154
이래서 내가 수녀들을 좋아하는 것이다. 그 사람들은 뽐내면서 점심이나 먹으러 가버리지 않는다. 그런 생각을 하면 굉장히 슬퍼지는 것이다. 그녀들은 뽐낼 만한 곳에 가서 점심을 먹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우울한 건 우울한 거다.- P155
그렇지만 이 박물관에서 가장 좋은 건 아무것도 움직이지않고 가만히 제자리에 있다는 것이다. 누구도 자기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10만 번을 보더라도 에스키모는 여전히 물고기 두 마리를 낚은 채 계속 낚시를 하고 있을 것이고, 새는 여전히 남쪽으로 날아가고 있을 것이다. 사슴은 여전히 멋진 뿔과 날씬한 다리를 보여주며 물을 마시고 있을 것이고, 젖가슴이 드러난 인디언 여자는 계속 담요를 짜고 있을 것이다.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 유일하게 달라지는 게 있다면우리들일 것이다. 나이를 더 먹는다거나 그래서는 아니다. 정확하게 그건 아니다. 그저 우리는 늘 변해간다.- P164
어떤 것들은 계속 그 자리에 두어야만 한다. 저렇게 유리친열장 속에 가만히 넣어두어야만 한다.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잘 알고는 있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안타깝다.- P165
어찌 보면 그 광경들은 나를 우울하게 만들기도 했는데, 앞으로 저 여자애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저 여자아이들이 고등학교나 대학교를 졸업했을 때를 말하는 것이다. 아마 대부분은 멍청한 녀석들과 결혼을 하겠지. 언제나 자기 차가 휘발유 1갤런에 몇 마일이나 달릴 수 있다고 떠벌리곤 하는 녀석들이나, 탁구나 골프를 치다가 지기라도 하면 어린아이처럼 화를내는 놈들이나, 비열하기 짝이 없는 녀석들과 짝이 되겠지. 또는 평생 가야 책 한 장도 읽지 않는 놈들에, 정말 지겹기 짝이없는 자식들과 말이다. 특히 지겹다는 말은 조심스럽게 써야 한다. 정말 지루하기 짝이 없는 녀석들을 그렇게 불러야 한다는소리다. 난 지겨운 녀석들을 이해할 수가 없다. 정말이다. - P166
지나치게 무언가를 잘한다면, 자신이 조심하지 않는한, 다른 사람에게 과시하게 되기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그사람에게 더 이상은 잘한다고 할 수가 없는 것이다.- P170
더 기가 막혔던 부분은 내 옆자리에서 영화를 보던 여자가 상영 시간 내내 울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여자는 영화가 말이안 되게 엉터리로 흐르면 흐를수록 점점 더 큰소리로 울었다.
이런 영화를 보고 운다는 건 어떻게 보면 굉장히 착한 사람이라는 의미도 될 수 있겠지만, 그녀 옆에 앉아 있던 내가 보기에는그렇지도 않았다. 여자는 어린 꼬마와 같이 왔는데, 아이가 몸을 비비 틀 정도로 지루해하다가,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해도 도무지 데리고 가지를 않는 것이다. 그저 가만히 얌전하게 앉아있으라는 소리만 할 뿐이었다. 그 여자가 가진 착한 마음이라는것은 늑대가 가지고 있는 정도였던 모양이다. 이런 엉터리 같은영화를 보고 눈물이나 흘리는 인간들은 열에 아홉은 나쁜 놈이기 마련이다. 농담이 아니다.- P187
변호사는 괜찮지만...... 그렇게 썩 끌리는 건 아니야. 그러니까 죄 없는 사람들의 생명을 구해준다거나 하는 일만 할 수있다면 좋겠지만, 변호사가 되면 그럴 수만은 없게 되거든. 일단은 돈을 많이 벌어야 하고, 몰려다니면서 골프를 치거나, 브리지를 해야만 해. 좋은 차를 사거나, 마티니를 마시면서 명사인 척하는 그런 짓들을 해야 한다는 거야. 그러다 보면, 정말 사람의 목숨을 구해주고 싶어서 그런 일을 한 건지, 아니면 굉장한 변호사가 되겠다고 그 일을 하는 건지 모르게 된다는 거지. 말하자면, 재판이 끝나고 법정에서 나올 때 신문기자니 뭐니 하는 사람들한테 잔뜩 둘러싸여 환호를 받는 삼류 영화의 주인공처럼 되는 거 말이야. 그렇게 됭션 자기가 엉터리라는 걸 어떻게 알 수 있겠니? 그게 문제라는 거지.- P228
그건 그렇다치고,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 명이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지. 온종일 그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바보 같은 얘기라는건 알고있어. 하지만 정말 내가 되고싶은건 그거야. 바보 같겠지만 말이야.- P229
정말 문제였다. 어디서도 아늑하고 평화로운 장소는 절대로찾을 수 없다는 것 말이다. 그런 곳은 없는 것이다.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곳에 일단 가보면우리가 보지 못하는 틈을 타서 어떤 자식이 바로 코밑에다 <이런, 씹할>이라고 써놓고는 사라져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P267
사실 난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몰랐다. 난 이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에게 한 걸 후회하고 있다. 내가 알고 있는건, 이 이야기에서 언급했던 사람들이 보고 싶다는 것뿐. 이를테면, 스트라드레이터나 애클리 같은 녀석들까지도. 모리스 자식도 그립다. 정말 웃긴 일이다. 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 말아라. 말을 하게 되면, 모든 사람들이 그리워지기 시작하니까.- P2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