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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위의 사색자

인간은 도시에 살고, 너구리는 땅바닥을 기고, 덴구는 하늘을 날아다닌다.
헤이안 천도 이래 이어져 내려온 인간과 너구리, 덴구의 삼파전.
덴구는 너구리에게 설교를 늘어놓고, 너구리는 인간을 호리며, 인간은 덴구를 두려워하면서도 공경한다.
덴구는 인간을 잡아가고, 인간은 너구리를 전골로 만들어 먹고, 너구리는 덴구를 함정에 빠뜨린다.
이렇게 수레바퀴처럼 빙글빙글 돈다.
돌아가는 수레바퀴를 보고 있으면 그 무엇보다 재미있다.
나는 이른바 너구리지만, 일개 너구리임을 부끄러이 여기며 덴구를 아득하게 동경하고, 인간 흉내도 무척 좋아한다.
따라서 내 일상은 눈이 팽팽 돌 지경이라 따분할 틈이 없다.- P12
세면대에 매달린 지저분한 거울 앞에서 벤텐으로 둔갑했다.
홀딱 반한 사람으로 둔갑해 있자니 기분이 묘했다. 생김새는 똑같아졌지만 거울을 봐도 도무지 흥이 나지 않았다. 좋아하는사람이 내 뜻대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내 뜻대로 움직이느냐 움직이지 않느냐의 차이에 반하는 맛이 있다. 하기야 기묘하기로 따지자면 너구리인 내가 인간에게 반한 것이 더 기묘한 일이다.- P55
이미 부조리의 영역에 당당하게 들어선, 근거를 따지지 않는 신념이야말로 어머니를 어머니답게 하고 나아가 우리를 우리답게 만들었다.
아버지도 위대했지만 우리 어머니 또한 위대했다.- P64
이 세상에 널린 ‘고민거리‘는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어찌 되건 별 지장 없는 고민. 또 하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해결되지 않을 고민. 이 두 부류 고민의 공통점은 괴로워하는만큼 손해라는 사실이다. 애써서 해결될 일이라면 고민할 시간에 노력하는 것이 최고다. 노력해도 해결되지 않을 일이라면 노력해봤자 헛수고다. 하지만 이렇게 깔끔하게 처리할 수 없을 때는 기분 전환이란 놈이 필요하다. 그래서 작은형의 우물이 쓸모가 있는 것이다.-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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