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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위의 사색자

페레도노프는 무심하게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페레도노프는 타인의 일에는 어떤 경우에도 관심을 갖는 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남을사랑해 본 적도 없고, 자기 이익에 이해관계가 있는 경우 외에는 다른 사람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는 사람이었다.- P21
"아르달리온 보리시치!" 다리야가 소리쳤다. "당신 정말 우유부단한 사람이군요. 그러면 안 되죠!"
"당신은 이 세상에서 가장 까다로운 사람이에요!" 류드밀라도 질세라 소리쳤다.
페레도노프는 기분이 나빴다. 그는 자신에게 거절당한 아가씨들이 슬픔에 빠져 울고불고 야단법석을 떨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안 그런 척하는 것이겠지‘ 페레도노프는 말없이 마당을 나오면서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아가씨들은거리로 향해 난 창문을 따라 뛰어다니며 페레도노프가 어둠속으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그의 등에 대고 계속 조롱하며 소리를 질렀다.- P85
페레도노프는 언젠가 자신이 자유사상‘을 가지고 있다는것을 보여 주기 위해 그런 책들을 갖고 있었지만, 사실 그는 사상은커녕 생각 자체를 아예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그 책들을 소장하고 있었지만, 읽은 적은 없었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손에 책이란 것을 잡아 본 지도 아주 오래되었으며,
신문조차 읽지 않아, 모든 소식은 주변에서 주워들은 것이었다. 그는 알고 싶은 것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외부세계에는 아예 관심이 없었다. 게다가 신문 구독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시간과 돈이 아깝다고 비웃을 정도였다. 그는 자신을 위한 시간만이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P95
페레도노프는 남학생들이 울 때, 더구나 자신이 원인을 제공해서 울면서 용서를 빌 때 아주 쾌감을 느꼈다. 잘못을 빌고 눈물을 참으려고 애쓰는 블라댜의 당혹스러워하는 모습과 죄지은 사람처럼 겁먹고 용서를 구하는 듯한 그의 미소를 보자, 페레도노프는 몹시 기분이 좋았다.- P118
"유대인들은 사기꾼이에요. 영리한 게 아니에요." 블라댜가 말했다
"그렇지 않아요. 유대인은 영리한 민족이에요. 유대인들은항상 러시아인들을 속이지만, 러시아인들은 그렇지 못하거든요"
"속여서는 안 돼요." 블라댜가 말했다. "남을 속이고 기만하는 일에 머리를 쓰는 것이 영리한 일인가요?"- P122
그러나 티시코프는 남이 듣든 말든, 리듬을 잡기 위해 끊임없이 남의 말꼬리를 잡아, 빠른 기계처럼 생각해 낸 리듬을 계속 읊어댔다. 그의 민첩하고 대담한동작을 보고 있으면, 이 사람은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죽었거나, 살아 있었던 적이 없었던 존재로, 울리는 말의 리듬 외에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현실 세계에서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사람 같았다.- P154
그에게는 천상의 세계가 주는 위안이나 지상의 세계가 주는 기쁨이 없었다 그는 언제나처럼, 지금 역시 어두운 고독의 세계 속에서 고통과 공포에 휩싸인 악마처럼, 망자의 시선으로 세계를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감정은 무뎠고, 그의 인식은 타락과 파멸의 도구였다 모든 사물은 그의 인식에 이르는 동안 더럽고 추한 것으로 바뀌었다. 대상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언제나 왜곡되어 있었고, 그것이 그를 기쁘게 했던 것이다. 그는 곧은 기둥, 혹은 깨끗한 기둥 옆을 지날 때면 항상 그것을 구부러뜨리고, 더럽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무엇인가를 더럽히는 것을 보면 그는 즐거웠다. 깨끗하게 차려입은 학생들을 보면, 그는 비웃고 모욕을 주었다. 그는 이 아이들을 예쁜 세탁기라며 놀려댔다. 그는 지저분한 것이 편했다. 그는 좋아하는 사람이 없었던 것처럼 좋아하는 대상이 없었다. 그래서 그의 천성은 감정의 한쪽으로만 작동할 수밖에 없었고, 압박할 수밖에 없었던것이다. 그는 사람들을 만날 때도 항상 그랬다. 특히 그가 막말을 할 수 없는 다른 사람이나 모르는 사람들과 만날 때 특히그랬다. 그에게 행복이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세상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자기 배나 불리는 것이었다.- P156
"남자에게 가장 좋은 나이는 열네 살이나 열다섯 살쯤이야!" 류드밀라가 말했다. "정말 아무것도 할 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는 나이야. 그러나 뭔가 예감하기 시작할 나이지! 이것이 바로 소년들의 가장 아름다운 점이야! 게다가 혐오스러운 수염도 없잖아!"- P304
"너희들은 아무것도 몰라!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를사랑하는 것은 아니야! 수염 달린 사기꾼을 사랑하느니, 그애를 사랑하는 것이 훨씬 아름다워. 나는 그를 아주 순수하게 사랑한단 말이야! 그에게 바라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P304
"알고 있어! 아무것도 기대할 것이 없다는 것은 알고 있어!
난 그냥 그 애가 나를 조금이라도 좋아해 줬으면 할 뿐이야.
어떤 식으로든."- P305
페레도노프는 자연 속에서 자신의 고통의 반향, 자연이 자신에게 적대적이라고 느끼는 공포의 반향만을 느꼈다. 그 적대감으로 인해, 모든 자연 속에 내재적이며, 삶의 외적인 판단만으로는 도달하기 힘든 삶, 오직 인간과 자연 사이의 깊고 신뢰할 수 있는 참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유일한 삶을 그는 느끼지 못했다. 따라서 그는 모든 자연이 저급한 인간의 감정으로 가득 차 있다고 인식했다. 개개인과 개별적 존재들의 유혹에 눈이 먼 그는, 자연이 들려주는 디오니소스적이고 원초적인 기쁨을 알지 못했다. 그는 우리들 대부분이 그렇듯 눈멀고 가련한 인간이었다.- P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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