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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위의 사색자

"줘이. 줘이. 메뚜기 줘이."
울 소리다. 그건 벌써 당연한 자기의 권리를 주장하는 게 아니라 한 수 지고 들어가는 못난 놈의 소리였다.- P16
그러나 어찌 된 셈인지 내가 더 미워하고 있는 놈은 역시, 그 웃통을 벗은 못난 메뚜기 임자놈이었다. 그놈이 내 동생 놈이라면,
그저 한바탕 두들겨주고 싶으리만치 미웠다.
나는 아침 목욕탕 안에서부터 참아오던 울분을 터뜨리기라도하는 듯 연방 ‘못난 자식‘ ‘못난 자식‘을 맘속으로 되풀이해가며 걸상을 들고 일어섰다.- P18
두 노인 손등에 사뿐사뿐 흰 눈송이가 날아와앉았다.
"알지. 내 다 알지."
이장영감은 고개를 수그린 채 주억주억하였다.
"그래도 내겐 그놈 하나밖에…………… 혹시나 돌아올까 해서."
"그럼. 그렇구말구. 내 다 알지."
이장영감은 그저 고개만 자꾸 주억거렸다. 박훈장은 이장영감의 손을 다시 한 번 쓸어보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나 털썩 이장네마루에 주저앉아버렸다. 으흐흐흐 하는 박훈장의 울음소리를 듣지 않으려는 듯이 이장영감은 마을 사람들에게로 돌아섰다.
"그럼 가자."
이장영감은 봉네의 부축을 받으며 지팡이를 한 손에 들고 선두에 섰다. 그 뒤를 한 줄로 마을 사람들은 따라 걸었다.
박훈장은 비틀비틀 학나무 밑으로 갔다. 그리고 어린애 모양으흐흐으흐흐 울며 눈발 속에 사라져가는 행렬을 언제까지나 바라보고서 있었다.-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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