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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스트
  • 알베르 카뮈
  • 12,600원 (10%700)
  • 2011-03-25
  • : 31,483

『페스트』는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부조리한 상황에 대한 은유다. 우리는 각자의 삶에서 풀리지 않는 숙제를 마주한다. 그 난제 속에서 문득 자신의 참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카뮈는 그것이 바로 인생의 의미라고 말한다.

가장 강렬한 이미지로 남은 것은 리유의 어머니의 '침묵'과 리유의 인생 스승인 '가난'이다. 여기서 가난은 결핍이 아니라 오히려 풍요이며, 침묵 또한 차가움이 아니라 다사로움이었다. 어떻게 침묵이 따스함이 되고, 가난이 풍요가 되는가. 그것은 침묵과 가난의 세계야말로 인류의 진정한 조국이기 때문일 것이다. 조국은 어머니이며, 어머니는 가난하고 침묵하는 존재다. 그리고 가난하고 침묵하는 존재는 곧 자연이다.

자연 속에서 인생의 지혜를 깨달았던 고대인들처럼, 의사 리유는 페스트로 봉쇄된 도시 오랑 너머의 바다와 하늘을 향한다. 바다를 등진 채 서 있는 도시 오랑과 그 시민들은, 결국 자연을 등진 현대 문명과 현대인을 상징한다. 페스트는 오랑 시민들에게 늘 가까이 있다고 믿었던 바다와 사랑하는 이들과의 갑작스러운 단절을 가져왔다. 그 고통은 뼛속 깊이 각인되었다.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격리와 거리두기를 경험한 우리는 그 고통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경험은 우리를 변화시켰다.

코로나 시국을 지나며 나는 줌을 통해 독서와 토론 모임을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부업을 중단했고, 함께 읽은 책들이 한 권, 두 권 쌓이면서 인생 후반기를 준비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침묵'과 '가난'이 의미하는 따스한 지혜를 발견했다. 그것은 내 인생 후반기를 밝혀 줄 등불이 될 것이다. 부산스럽던 삶의 궤적들이 결국 무엇을 향하고 있었는지를 이제야 깨닫는다.

그렇다, 모든 사람들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하나같이 괴로운 휴가, 도리 없는 귀양살이, 결코 채울 길 없는 갈증으로 다 함께 고통을 당했던 것이다. 그 산더미처럼 쌓인 시체들,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 운명이라고 불러 마땅한 경고, 공포에 떨면서 맴도는 제자리걸음, 그들의 마음속에 치밀어 오르던 무서운 반항, 이러한 모든 것들의 틈바구니에서도 하나의 거대한 기운이 결코 그치지 않은 채 누비고 다니면서 공포에 싸여 있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진정한 조국을 다시 찾아야 한다고 경고하듯이 말해 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 모두에게 있어서, 진정한 조국은 그 질식해 있는 시가의 담 저 너머에 있었다. 그 조국은 언덕 위의 그 향기로운 덤불 속에, 바다 속에, 자유로운 고장들과 따뜻한 사랑의 무게 속에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바로 그 조국을 향해서, 그 행복을 향해서 돌아가고 싶었으며, 그 밖의 모든 것들에 대해서는 등을 돌리고 싶었던 것이다.- P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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