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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라
  • 라빈드라나드 타고르
  • 13,500원 (10%750)
  • 2021-06-10
  • : 107

영국의 셰익스피어나 독일의 괴테를 떠올리게 하는 세계적인 대문호 인도의 타고르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인도의 힌두이즘 전통과 영국의 식민통치를 통한 서구의 근대정신이 만나 피운 꽃인지도 모른다. 브라만 계급이지만 카스트의 폐해를 인식하고, 민족적 자존심에 머물지 않고 인류 보편의 인류애를 주창했기 때문에 인도 국민과 세계 시민의 사랑을 받고 있는 타고르가 높이 든 인도 개혁과 인류애의 실천이라는 횃불은 여전히 강렬하게 타오르고 있다. 그만큼 이루기 힘든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여전히 현재성을 가진 그의 시와 소설은 현대적이진 않지만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의 원천은 고전에 뿌리를 두면서도 시적이고 창조적인 타고르만의 언어와 사상에 있는 걸까. 아무튼 인도는 타고르가 있다는 사실이 부럽다. 우리도 분명 그런 시성이 있거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의 정체성에 뿌리내린 인류의 유산으로서 우리는 무엇을 내놓을 것인가. 동방의 이 작은 나라에서 그 일을 해낸다면 매우 뜻있을 것이다.

소설 <고라>는 종교가 사회 제도화되어 있는 인도에 대한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힌두교 정통파 사회와 브라만 혁신 교회를 중심으로 한 사회의 갈등은 첨예한 이데올로기 대립을 방불케 한다. 두 사회에 속한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경원하고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웃으로 이사 온 파레슈 노인의 가족으로 인해 마을에는 일대 파문이 인다. 우연히 친절을 베풀면서 브라만 교회의 일원인 이 가족의 친구가 된 비노이와 고라는 그 집의 딸들인 스차리타와 롤리타를 만나게 되면서 힌두교 정통파인 두 사람의 사고방식에 큰 변화가 온다. 파레슈 노인으로부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주체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교육을 받은 두 딸을 통해 여자라는 존재를 거의 처음 인식하게 된 것이다. 인도의 자주 독립을 위해 힌두교 정통을 신봉하고 있는 비노이와 고라는 이제 인도의 행복과 번영을 위해서는 여자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고의 일대 전환을 하게 된다. 고라의 열렬한 정통 신봉에 처음에는 반감을 갖고 어리둥절하던 스차리타와 롤리타도 그의 인격에 감화를 받고 차츰 힌두교의 참뜻에 마음을 열게 된다. 그들이 서로 반목하는 두 사회의 편견과 박해에도 불구하고 사랑으로 맺어지게 된 뒤에는 파레슈 노인과 고라의 어머니 아난다모이라는 열린 마음을 가진 두 어른의 남다른 양육과 응원이 있었다. 사실 고라는 아일랜드인 부모의 아이로 브라만 계급이 결코 될 수 없는 출생의 비밀이 있었다. 인도를 그토록 사랑하는 고라가 그 사실을 알게 된 날, 고라는 오히려 (브라만으로서 정죄식을 치룸으로써가 아니라) 이제야말로 진짜 힌두가 되었다고 기뻐한다. 브라만이라는 자신의 계급으로 인해 늘 민중과 진정한 하나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안타까워했던 고라는 스차리타가 그토록 사랑하는 (수양) 아버지이자 스승이자 벗인 파레슈 노인을 찾아가 그의 기도법을 배우고 싶다고 말한다. 파레슈 노인과 아난다모이는 인간을 인간으로, 생명을 생명으로 사랑하는 종교의 참뜻을 실천하는 어른들이고 개인의 자유야말로 사회를 발전시키는 근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진정한 근대인들로서 정통파와 브라만파를 통합할 수 있는 모델로 타고르가 제시한 것 같다.

그 누구도 억압하지 않고 오직 신으로부터 모든 것을 받고자 하는 파레슈 노인의 기도 시간에는 스차리타가 함께 한다. 그의 명상과 기도 속에 깃든 평온은 주변으로 확산되어 인도의 미래를 비추어준다. 아마도 타고르가 평생 추구했던 것도 바로 그런 평화일 것이다. 소리높여 주장하지 않아도 사람을 변화시키는 조용한 혁명. 고요와 평온이야말로 요즘 시대에도 미래에도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정한 가치가 아닐까. 흥분과 열정을 가라앉히고 전체를 볼 수 있을 때 행동하는 지혜를 보여주는 파레슈 노인과 모든 이를 품는 어머니의 자비로움으로 어떤 장애도 견뎌내는 사랑을 보여주는 아난다모이는 인류의 영원한 이상적 인간상일 것이다.

"나는 네 마음에 일어나고 있는 새로운 감정에 반대하는 말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구나. 기도로써 마음을 가라앉히고, 내심에 있는 정의의 표준과 영원한 진리의 빛에 비춰보면 무슨 일이든 차차 뚜렷해지는 법이다. 모든 것 위에 서 있는, 보다 위대한 신을 국토나 인간보다 낮게 보아서는 안 된다. 그것은 너를 위해서도 소용없을뿐더러 또 나라를 위해서도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는 일이다. 나는 방황하는 일 없이 신께 내 마음을 송두리째 바치고 만족하고 있다—그것이 나라를 위해서나 모든 사람을 위해서도 참된 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P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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