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14-0807
소포클레스가 그린 인간의 본질은 ‘본성’에 있다고 한다. 그가 아흔의 나이에 쓴 마지막 작품 <필록테테스>를 보면 아킬레우스의 아들인 네옵톨레모스가 본성이 다른 오뒷세우스를 따르다가 결국 본성이 같은 필록테테스와의 우정으로 기우는 내면적 변화가 인상적이다. 결국 사람의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게다가 본성이 변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으로서는 해결할 수 없는 한계 상황에 도달하기도 한다. 그런 상황에서 오이디푸스는 제 손으로 제 눈을 찌르기도 하고, 오레스테스와 엘렉트라는 결국 어머니를 살해하고, 안티고네는 자살하고, 필록테테스와 네옵톨레모스는 헤라클레스의 등장에 의해 겨우 파국을 면한다. ‘모 아니면 도’식의 직진형 인간들인 셈이다.
소포클레스의 인간들은 결코 운명을 회피하지도 순응하지도 않는다. 자신의 지혜로 자신의 운명에 맞섰던 오이디푸스는 결국 운명의 올가미에 걸려들었음을 알고도 책임을 전가하지 않는다. 그러나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에서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운명의 일격에 당한 피해자이며 부친을 살해한 자신의 행동은 정당방위였다며 적극적으로 자신을 변호한다. 게다가 자신을 헌신적으로 부양하는 딸들이야말로 아들이나 마찬가지라며 자신을 추방하다시피한 아들들에게는 저주를 퍼부으며 죽는다. 귀족적인 본성이란 결코 자신이 당한 수치와 원한을 잊지 않고 명예를 지키고 복수하는 데 목숨을 거는 건가 보다.
호메로스의 전통 위에 굳건히 서 있는 듯한 이 고전적인 작가의 작품들은 만만찮은 인물들의 불꽃 튀는 대결이 압권인데, 말로는 설득할 수 없는 그들의 본성과 본성의 대결이 평행선을 그리며 비극적 결말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은 말할 수 없는 비애감을 느끼게 한다. 인간의 고통조차 인간으로서 짊어져야 할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영웅적 인간들은 짐승과 인간의 경계에서 여전히 고민하고 방황하고 죽고 죽이는 오늘날의 인간들에게도 여전히 영웅적이고 그래서 지극히 인간적이다. 짐승으로 살 것인가, 인간으로 죽을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