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회자되는 것을 보고 벼르던 끝에 드디어 읽었는데… 오래전(1982년)에 쓴 것을 감안하더라도 동화로나 SF로나 제법 실망스러웠다. ‘우주’를 배경으로 한다고 다 SF가 되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행성에서의 정착기가 억지스러웠으며 나방 인간의 존재도 이야기의 주제와 맞물리지 않은 채 겉돈다.
초록 책의 존재 자체는 매우 훌륭한 설정이지만 마지막 반전부터 결말까지가 너무 짧다. 이 반전을 위한 빌드업의 부재로 초록 책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좋은 소재를 아깝게 날려 버렸다고 할까.
이 모든 것을 떠나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이 이야기를 끌고 가는 주어인 ‘우리’다. 우리라면 그중에 ‘나’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데 그건 대체 누구인가? 아빠의 질문에 ‘우리’가 대답했다는 문장으로 미루어 보건대 우리는 삼 남매인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그중 ‘나’는 누구인가. 삼 남매 조, 세라, 패티 모두 3인칭으로 서술되고 있다.
독자는 ‘시점’을 따라가며 읽을 수밖에 없는데, 삼 남매를 칭할 때는 ‘우리’라고 하면서 그중에 ‘나’가 빠져 있으니 도대체 누구의 시점을 따라가야 할지 알 수가 없다. 번역의 실수인지, 원작에서부터 이런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