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 홈' 이 더 재미있긴 하지만...
가지않은길 2020/01/29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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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 엄마 맞아?
- 앨리슨 벡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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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0) - 2019-03-15
: 299
'펀 홈' 을 먼저 읽고서 넘어오길 권한다. '펀 홈'이 재미있는 상업영화라면 '당신 엄마 맞아?' 는 재미없는 예술영화라고 할까...드라마틱하고 충격적인 면에서는 '펀 홈' 을 더 추천한다.
'당신 엄마 맞아?' 는 '펀 홈'에서 확장된 엄마와의 관계, 나의 성장과정과 연애 이야기, 심리치료사와의 교류 등을 그리고 있다.
최종 목표는 엄마와의 관계를 재정비하는 것이지만, 험난하다.
무척이나 사적이다. 여성들의 일대기가 개인적이고 사소하다 치부되고 있는 점이 나도 아쉽기에 이게 단점이라 하긴 미안하지만, 똑같이 일상을 묘사해도 한 가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느낌이었던 '펀 홈' 에 비해 좀 산만하단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꽤 어렵다. '펀 홈' 을 읽으면서 문학작품을 인용한 표현방식이 매우 지적이고 멋지다고 생각했다. 만화가 결코 가벼운 예술이 아니란 걸 느꼈다. 문학적 소양이 없어도 재미있었다.
그런데 '당신 엄마 맞아?' 는 어렵다. 정신분석학 논문이 엄청나게 많이 인용된다. 깨알같은 주석을 계속 읽어야 해서 눈이 피곤하고, 번역가의 의도인지 모르겠지만 전부 직역투라서 가독성이 나쁘다. 국내 학술서적도 (아마도 교수들이 번역해서) 이런 말투를 쓰기에 그대로 살린 걸까? 부드럽게 번역하면 정확성이 떨어져서? 결국 독자의 이해력이 요구된다.
주석 글씨 크기는 좀 키워줬으면. 그리고 검은 바탕에 붉은 글씨를 넣으니 안 보이는데...비주얼을 해치지 않을 의도에서 그런 건가. 주석 읽느라 고생을 많이 했다.
대화문의 구어체 번역은 잘 되어 있다. 그런데 '사기꾼'을 '트릭스터' 라고 그대로 쓰는 등 아쉬운 부분이 약간 있었다.
앨리스 밀러의 '재능 있는(gifted) 아이들의 드라마' 는 원문 그대로 번역하면 그게 맞지만, 여기 나온 것만 보면 정서적 감수성이 예민하고 눈치빠른 아이들이라서 '재능 있다' 는 표현과는 약간 다른 것 같다. 국내 정식 출간서는 '천재' 라고 번역되었던데, 한번 읽어봐야겠다.
버지니아 울프의 책도 아직 안 읽어서 잘 모르겠고...에이드리언 리치의 책은 이걸 계기로 읽어볼 생각이다.
마지막 부분에서 심리치료사의 태도나 벌레 공포증의 원인, 파괴 개념은 아직도 이해가 잘 안 된다. 대충 '아기와 엄마는 한몸이었기에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게 고통스럽고 파괴적이다, 하지만 그 과정이 필요하다' 고 이해했다.
비록 어렵긴 하지만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앨리슨 벡델의 저서가 국내에 더 많이 나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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