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리뷰] 썅년의 미학
가지않은길 2019/01/22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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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썅년의 미학
- 민서영
- 13,320원 (10%↓
740) - 2018-08-17
: 3,873
제목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썅년‘ 주제에 ‘미학‘ 이라니.
몇 장 넘겨 보니 다분히 공격적이고 불편한 내용이 많아서 읽기 꺼려졌다.
하지만 집에 와서 찬찬히 읽어 보니 그렇지 않았다.
꽤나 급진적인 페미니즘 책, 남성 혐오로 보일수도 있다. 하지만 쌍욕을 꺼낼 정도로 강하게 외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 여자가 얼마나 부당함을 참고 살아왔는지를. 유교 중심의 남존여비 문화가 뿌리깊은 이 나라에서는 특히 말이다.
그동안 끔찍한 일들을 당했지만 애써 잊고 살아왔던 게 생각났다.
초등학교 저학년 짝꿍 남학생의 괴롭힘, 소풍가는 버스에서 자는 동안 팬티를 들추는 성추행, 중학생 때는 모르는 남학생이 따라와서 엘리베이터에서 강제 추행하려던 걸 가방을 휘둘러 쫓아냈고, 대학생 때는 잘 모르는 남자 선배에게 이틀 정도 집요하게 전화 스토킹을 당했다.
내가 당한 건 다른 여자들이 당하는 범죄에 비하면 경미한 수준이지만, 평범한 사람이 여자라는 이유로 살면서 이 정도의 봉변을 당하는 게 보통인가?
어렸을 때 장난을 치던 녀석들은 지금쯤 훌륭한 어른이 됐겠지, 가 아니라 그때 그 놈들이 지금쯤은 범죄자가 되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소름이 끼친다. 왜 어른들은 ‘남자애가 여자애를 괴롭히는 건 좋아서 그런 거래‘ 하고 넘어가려고 할까?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다 보니 말이 길어졌지만... 책을 읽다 보면 당연하게 생각하던 것, 여자 스스로도 같은 여자를 차별하고 혐오했다는 것 등을 깨닫게 된다. 인터넷 악플로 보는 ‘미러링‘ 은 치졸하게 느껴졌지만, 이 책의 서문에 나온 ‘미러링‘ 만화는 진심으로 속이 시원했다.
중간에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들도 있다. 예를 들어 모텔을 포함한 데이트 비용을 남자가 다 부담해야 한다든가, 헤어지면 보복을 당할 위험을 차단하기 위해 연락처와 기록을 삭제한다든가 하는 건 사랑하는(했던)사이에 인간적으로 너무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책의 흐름을 보면 그게 핵심이 아니다. 여성의 고충이 이렇게 크기 때문에, 여성 피해 범죄율은 이렇게 높은데 처벌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런 극단적인 조치라도 취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라고 성토하는 것이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의 배려가 넘치는 섹스는 충분히 행복하지만, 이 책에서는 이기적이고 성급한 경우에 벌어지는 일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니 부디 겉만 보고 남성혐오라고 판단해서 멀리하지 말고, 우화라고 생각하고 한번 읽어보길 바란다. (물론 우화 뿐 아니라 팩트도 있다.) 페미니즘 입문서로 추천한다.
여성이 주체가 되는 담론은 아직 한참 더 많이 필요하다. 온화한 것부터 급진적인 것까지. 용기를 내서 물꼬를 튼 작가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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