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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찍햄톨님의 서재
  • 산책과 연애
  • 유진목
  • 13,500원 (10%750)
  • 2020-09-15
  • : 2,628

어쨌든 인간의 주변에는지네나 뱀보다는 인간이 자주 출몰한다. 그러니 각별히조심해야 할 것도 지네나 뱀보다는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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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 다른 것이 있다면 내게도 알려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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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네도 그렇지만 돌변하는 인간에게 나는 대단히 취약하다. 이렇게 공공연하게 약점을 드러내도 되나 싶을만큼 나에 대한 진실된 면 중 하나다. 이 책을 읽는 사람 중에 나를 뒤흔들어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싶다면 나에게 접근한 뒤에 어느 정도 시간을 두었다가 갑자기 돌변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나는 한동안 바닥에 쳐박혀서 일어서는 것조차 못한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
당신은 그런 내 앞에서 한동안 승리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그러니까 어쩐지 상대를 뭉개고 승리하는 기분을 맛보고 싶다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태도로 돌변하면 된다. 그러면 나를 가볍게 제압할 수 있다. 지금까지 나에게 했던 말을 바꾸고, 표정을 바꾸고, 우리 사이에 있었던 일이 모두 거짓이었다고 하면 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가서 마구 거짓말을 해대면 된다(사실 이런 방법을 쓰면 사람 하나는 반쯤 죽여놓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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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선뜻 약점을 드러내는 것은 어느 정도는 상대가 돌변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자신을 지키는 방법 중에 최악의 그것밖에 모르는 것이니. 나로부터 자신을 지키려는 인간을 이해 못 할 것은 없다. 인간은 스스로 자신을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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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이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라 여겨서 그랬다면 나는 바닥을 짚고 일어서서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다. 모든 것을 부정한 자가 그 자리에 남아서 자신이 외면한 것들을 앞으로 어떻게 처리할지 궁금하긴 하다. 하지만 직접 물어볼 수는 없는 노릇이고. 언젠가 또 알 수 있는 날이 오겠지. 너무 늦지 않게 알고 싶다(뒤처리 중에 자기 거짓말을 믿어버리는 편리한 발법도 있기는 하다).-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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