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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arsu님의 서재
  • 오늘의 할 일
  • 김동수
  • 14,400원 (10%800)
  • 2024-08-23
  • : 3,080

어린이의 생각과 행동에 ‘순수‘라는 경계를 세우거나 한계를 채우지 않는 일. 그것은 자신의 제1 독자를 어린이로 두고 있는 ‘그림책’이 수행해야 하는 의무와 역할 중 하나이지 않을까요. 어린이는 (마땅히 어른과 같은) 한 사람으로서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자신의 필요를 채워가고, 자신의 소망을 찾아갑니다. 자신의 기쁨과 슬픔을 표현하고 자신의 잘못과 실수를 반성합니다. 그리고 어린이는, (마땅히 어른의 것이기도 한) 자신의 해야 ‘할 일’을 합니다.


파란 물빛을 가득 안은 이 그림책에서 만나는 어린이에게도 할 일이 있습니다. 강물에 버려진 쓰레기를 발견하는 일. 그러고는 그 주위에 쪼그려 앉아 작은 나뭇가지로 쓰레기를 하나둘 건져 올리는 일. 주변에 자신을 지켜보는 존재라곤 백로와 오리 세 마리밖에 없는 강변에서, 어린이는 아마도 자주, 혹은 매일 묵묵히 ’오늘의 할 일’을 해왔을 겁니다. 


아니요, 이 어린이를 지켜봐 온 다른 존재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강물 속에 사는 ‘물귀신’들이었죠. (갑자기 분위기 호러 아님. 아무튼 아님…) 출판사의 그림책 소개 글에 의하면, 이 물귀신들은 인간이 더럽히고 망쳐놓은 것을 “묵묵히 자정 작용하는” ‘자연’의 상징입니다. 심각한 오염으로 인해 자정의 한계를 느낀 물귀신들은 강물 밖의 어린이를 강물 속으로 초대합니다. 그리고 어린이에게 다정히 요청합니다. 맑은 물로 돌려놓기 위해 애쓰고 있는 자신들을 도와달라고요.


🔖 “반가워요, 오늘의 어린이. 오느라 고생 많았습니다.” “오늘 우리를 도와줄 수 있을까요?”


그런데 잠깐, ‘오늘의’ 어린이라니요. 그렇다면 어제의, 엊그제의, 일주일 전의, 한 달 전의 어린이가 있었다는 말일까요. 언제든 어디서든 할 일을 해 온 덕에 할 일을 부탁받은 다른 어린이들이 있었다는 것일까요. 뽀글뽀글 뿜어나오는 작은 의문은 금세 사라지고 맙니다. 어린이와 물귀신의 곁에서, 누구든 어렵지 않게 그 답을 발견할 수 있거든요. 


물귀신들에게서 ‘오늘의 할 일‘을 부탁 받은 어린이는 기꺼이 돌봄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할 일의 목록을 하나씩 지워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내내, 우리는 작가님이 부려 놓은 유쾌한 재치의 마법에 홀라당 빠져들 수밖에 없습니다. 한바탕 재미를 느끼고 마음껏 웃음을 터트리고 나니, 무언가가 “주르르르륵” 흘러나옵니다. 그것은 어린이와 함께 물귀신들로부터 초대받은 우리를 위한 물귀신들의 기념품일수도, 물귀신과 우리 모두를 향한 할 일의 목록일 수도 있겠습니다. 


작은 나뭇가지로 강가에 버려진 캔 하나, 페트병 하나, 과자 봉지 하나 집어 올리는 일을 그저 별거 아닌 작은 일이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요. 그 영향과 가치를 순수하게 믿는 일을 그저 어리고 순진한 발상과 믿음일 뿐이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요. 한 달 전에도, 일주일 전에도, 엊그제에도,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작은 나뭇가지를 손에 쥐고서 강변에 쪼그려 앉을 어린이를 알게 된 우리는 어린이와 함께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말해야만 할 것입니다.


바라는 바에 다다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과 해야만 하는 일을 아는 존재는,

아는 데서 그치지 않고 묵묵히 그 일을 하는 존재는,

그렇게 바라는 바로 함께 섞여가며 되어가는 존재는

결코 작지 않다고. 


8년 만에 세상에 나온 김동수 작가님의 신작을 펼쳐보는 일은 오랫동안 기다리며 기대했던 ‘오늘의 할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어린이의 옆에서, 어린이와 함께 물귀신들의 다정한 요청 위에 올라타는 일이기도 했고요. 『오늘의 할 일』을 다하는 순수(純水)로의 모험에서 순수(純粹)의 의미를 되찾아가는 일. 그렇게 순수의 책임을 다하며 순수로 되어가는 삶을 함께 꿈꾸는 일. 함께 사는 일. 그것이 우리로서 함께 하고 싶은, 함께 해야 하는 ’오늘의 할 일’이라 용기내어 적어보며 어느 날 어느 책에서 만났던 문장을 나눠봅니다.


📚 마리아 투마킨,  『고통을 말하지 않는 법』, 을유문화사, p.349 /

나는 오스트레일리아 철학자인 조앤 포크너가 순수함을 대하는 방식이 마음에 든다. 포크너는 순수함에 관해서는 세 가지 커다란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첫 번째 문제, ‘순수함’은 자기중심적인 어른들 자신을 위한 판타지다. 두 번째, 순수함은 어른들이 더 이상 그것을 지니고 있지 않다고 여겨지는 아이들을 포기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마지막으로 그것은 아이들이 윤리적인 삶, 시민으로서의 삶에 동참하지 못하게 막는다.




* 창비 출판사로부터 그림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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