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그런 날이 있잖아요. 누군가 아무렇지 않게 건넨 말과 행동이 내 마음에 강속구처럼 날아와 박히는 날. 평소와는 다르게 잘 풀리지 않은 일로 인해 나 자신을 몰아세우게 되는 날. 내 안의 상태를 외면하는 바깥의 하루가 도대체 언제 끝나나 싶은 날. 머피의 법칙이 마치 내 이름을 넣은 OO의 법칙처럼 느껴지는 날. 그러니까, 남들은 다 맑고 밝은 하늘 아래서 잘 지내는 것 같은 날. 거센 비바람을 몰고 오는 먹구름도, 용변의 의지를 다지는 새들도 다 내 머리 위에만 있는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히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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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날의 처진 몸을 반기는 곳이 있습니다. 이 모든 날의 지친 마음을 맡기고 싶은 곳이 있습니다. 잔뜩 묻은 마음의 얼룩을 씻어내는 곳. 잔뜩 더러워진 마음의 때를 닦아내는 곳. “옷을 세탁하듯 마음을 빨아내는” 이곳은 바로 마음 세탁기입니다.
자신의 감정과 마음을 돌아보고 돌보는 시간은 아이에게도, 어른에게도 꼭 필요하죠. 그 시간을 ‘세탁기’로 공간화하여 표현한 ⟪마음 빨래⟫ 그림책. 이 그림책을 한 장씩 넘기다 보면, 홀로인 내 감정을 닦아내는 ‘세제’ 같은 고마운 무엇을 떠올리게 됩니다. 홀로인듯한 내 마음을 조물조물 만질 수 있는 반가운 어딘가를 떠올리게 됩니다.
이렇게 저렇게 얼룩진 나를 마주하는 시간은, 내 바깥에서 묻은 때를 내 안에서 떼어내고 털어내고 씻겨내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저렇게 얼룩진 나를 긍정하는 공간은, 내 바깥에서 묻은 때가 내 전부가 아님을 (그럴 수도 없음을) 인정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나의 감정과 마음을 돌보면서 나를 지켜내는 ‘빨래’의 시간. 누구에게나 다 다르지만 누구에게나 꼭 필요한 ’빨래’의 공간. 당신에게는 그것이 무엇인가요. 그곳이 어디인가요. 그때가 언제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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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책을 만나는 분들과 함께 비교해서 보고 싶은 두 장면이 있습니다. 바로 ‘놀이터’가 그려진 장면인데요. 이야기 초반부의 놀이터에는 그곳에서 응당 놀고 있어야 할 친구들이 한 명도 보이지 않습니다. 우중충한 하늘 아래 쓸쓸한 기운마저 감도는 놀이터의 곳곳에는 각양각색의 옷가지들만 놓여 있을 뿐이죠. 그러나 마음의 얼룩과 마주하고, 마음의 얼룩을 만져주고, 마음의 얼룩을 닦아낸 후 다시 찾은 놀이터에는 반가운 친구들이 가득합니다. 저마다의 마음을 저마다의 마음 세탁기 안에서 빨고 난 후, 후련해진 마음으로 다시 놀이터를 찾아왔을 아이들. 꽃비가 내리는 놀이터도,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도 모두 해사한 얼굴로 서로를 반깁니다.
** 올리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