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믿음을 품은 이들은 자신이 무엇이든 분명하게 알 수 있기를, 언제든 확실하게 선택할 수 있기를, 어디서든 흔들림 없이 행동할 수 있기를 바라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세계 안에서 자신의 믿음을 더욱 확고하게 지키고 싶은 마음은 가끔 (아니, 사실은 자주) 타인에게 자신의 믿음을 전달하고 싶은 (아니, 사실은 강요하고 싶은) 마음으로 나아가기도 하죠. 그럴 때 자신과 다른 앎을 가진, 자신과 다른 선택을 내리는, 자신과 다른 행동을 하는 이들을 쉽게 판단하고 비난하곤 합니다. 각자의 다름 안에 있는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지 않아서, 각자의 다름이 가진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듣지 않아서, 각자의 다름은 서로의 틀림이 되어버립니다.
분홍색 고깔 모자를 쓴 ‘고깔 곰’. 연두색 투구를 쓴 ‘투구 곰’. 그리고 그 둘과 한 숲에서 살아가는 꼬마 곰의 이야기 ⟪시선 너머⟫는 자신의 믿음 안에 갇힌 이들을 보여줍니다. 자신의 시선 바깥의 이야기를 듣지 못하는 이들을 들려줍니다.
🔖“두 곰이 물러서지 않는 동안 불길은 계속 이어지고 숲은 사라져 갔습니다.”
고깔 곰과 투구 곰은 서로 다른 믿음을 품고 살아갑니다. 서로 다른 마음을 짓고 살아갑니다. 서로의 다른 믿음을 부정합니다. 서로의 다른 마음을 힐난합니다. 한 가지 사실에 대해 서로 다른 진실을 품은 고깔 곰과 투구 곰의 싸움은 결국 전쟁으로 이어지고, 모두의 숲은 활활 타오르고 맙니다. 그때, 고깔 곰과 투구 곰은 꼬마 곰에게 묻습니다. 꼬마 곰, 나를 믿어야 해! 아니야, 나를 믿어야 해! 평화는 너의 선택에 달렸어!
그러나 꼬마 곰은 그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내리지 않습니다. 둘의 사이를 넘어서, 둘의 시선 너머로 나아가는 선택을 내립니다. 너와 네가 믿는 진실에서 거리를 두고서, 너와 네가 믿는 진실 간의 거리를 좁혀갑니다. 온통 불타버린 숲의 끝에 선 작은 곰은 작은 몸으로 더 커다란 세상을 마주합니다.
꼬마 곰이 서 있는 곳(표지의 그림 참고) 아래로 졸졸 흐르는 물줄기는 이쪽과 저쪽을 가르는, 고깔 곰과 투구 곰을 가르는 기준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이쪽과 저쪽이 아닌 다른 쪽으로도 낼 수 있는 새로운 길의 흐름처럼 느껴지는데요. 꼬마 곰이 쓰고 있는 모자의 모양을 확인하며, 이 색도 저 색도 아닌 다른 색의 길로 나아가는 꼬마 곰의 걸음을 바라보며, 저는 제 느낌을 조금 더 믿어보게 되었습니다.
꼬마 곰은 고깔 곰과 투구 곰에게 ‘언젠가 다시 만나면 들려줄 이야기’를 약속하며 길을 떠납니다. 그 이야기들은 누구도 틀렸다 쉽게 단정하지 않는 이야기일 거예요. 사실 꼬마 곰은 모두의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는, 모두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듣는 ‘선택’을 매번 해 왔다는 것을. 이야기 바깥에서 이야기를 만난 독자는 바로 알아차릴 수 있을 겁니다. 이야기 속의 고깔 곰과 투구 곰도 너무 늦지 않은 때에 꼬마 곰의 마음을 알아차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소리 작가님의 전작 ⟪노를 든 신부⟫, ⟪엉엉엉⟫, ⟪개씨와 말씨⟫ 등을 만나오며 제가 작가님의 작품 키워드로 삼았던 단어는 바로 ‘가능성’이었어요. 다를 가능성, 달라질 가능성, 다다를 가능성. 작품마다 작가님이 설정한 상황과 주제, 작가님이 그려낸 분위기와 그림체는 모두 다르지만 언제나 ‘너머’로 넘어서는 가능성을 그리고 말했던 작가님. 신작 #시선너머 는 반으로 갈라진 (어쩌면 언제까지나 반으로 갈라지길 바라는지도 모르는) 우리 사회로 보내는 작가님의 여전한 믿음이자 온전한 마음이 아닐까, 감히 생각해 봅니다.
** 길벗어린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