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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arsu님의 서재
  • 쌀 재난 국가
  • 이철승
  • 15,300원 (10%850)
  • 2021-01-25
  • : 2,356
“코로나19로 인하여 사회 구성원간의 격차가 몹시 심화되고 있음과 더불어 직업과 세대, 성별과 지역 등 여러가지 사회의 범주 안에서 각기 다른 의견간의 갈등과 소외 현상 또한 심화되고 있는 2021년. 이 책을 통해 우리 사회의 불평등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한 명의 사회 구성원으로서 어떠한 사고 과정을 거쳐 판단하며 행동해야 할지를 돕는 ‘명확한’ 근거를 얻고 싶다.”

이 책을 읽기 전, 이 책을 향한 나의 기대평은 위와 같았다. 책장을 덮은 후, 나의 기대평에 부응하는 아니 그 이상의 책을 읽었음에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서구의 이론으로 한국 사회의 구조와 정체성을 설명하는 것은 많은 사회학자들 조차 어느 단계에 이르게 되면 손을 떼게 될 만큼 한계가 있음을 인정한 저자는 자신의 연구와 언어로서 한국 사회를 적확하게 해석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 노력의 통찰물은 저자의 전작 #불평등의세대 와 바로 이 책 ‘쌀 재난 국가 - 한국인은 어떻게 불평등해졌는가’ 이다. (3부작의 피날레를 장식할 저자의 다음 저서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이 책은 한국인의 사고와 한국 사회 구조를 이루는 것들의 총체적 기원인 ‘쌀 농사 체제’의 구조 및 특징과 산업사회로 이어지는 이식 과정, 그리고 현재 코로나 펜데믹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 또한 어떻게 지배하며 굴복시키고 있는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 즉, ‘벼 농사 경작 시스템’이라는 독립 변수에 의해 다양한 종속 변수(불평등, 비교문화, 교육열, 부동산 과열 투자, 연공 문화, 노동시장의 이중화, 여성 차별과 낮은 출생률, 청년 실업 등)들이 어떻게 영향받아 왔는지, 그로 인해 우리 사회가 (속된 말로) ‘대체 왜 이 모양 이 꼴인지’를 명확하게 설명한다. 방대한 양의 데이터 수집과 분석을 담아낸 수많은 그래프와 표, 수식들은 이 책 전반에 걸쳐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의 직관적인 이해를 돕는다. (이는 곧 이 책의 존재 가치와 의미, 신뢰도를 나타낸다). 더불어 저자의 상세하며 친절한 설명은 독자의 이해의 깊이와 너비를 넓힌다. 

오래 전부터 ‘쌀’을 주식으로 살아온 조상들의 피를 이어 받아 우리의 주식 또한 여 전히 ‘쌀’인 것을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여온 우리의 삶에 이 책은 여러 의문과 생각할 거리를 가득 던진다.

- 우리의 조상들은 왜 쌀에 갇히고 중독되었는가?
- ‘벼농사 체제’에서 재난의 방비와 즉각적 대처를 요구받은 ‘국가’의 역할은 오늘날에도 유효한가?
- ‘공동으로 생산’하지만 그 수확물은 ‘개별 소유’하는 벼 농사의 이중구조 시스템의 장단점(비교와 질시의 문화, 관계에 좌우되는 행복과 불행, 집단주의적 위계구조와 연공문화, 협업과 조율 시스템의 발전, 평준화 및 표준화의 추구로 인한 경쟁력과 생산력 증가)은 우리 세대에까지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 코로나 펜데믹에 대처하는 우리 국민들의 문화적 DNA는 어디로부터 왔는가? 무엇이 생존을 위한 국민들의 ‘자발적인’ 행동과 협력을 유도하는가?
- 벼 농사 체제부터 현대까지 이어지는 ‘불평등의 기제’는 무엇이며 누가, 이것을, 어떻게 이용하여 재산을 축적하고 성공을 보장받았는가? 
- 보편적인 복지국가로의 전환을 가로 막고 있는 ‘자산 취득 경쟁’ 의 기원은 어디서 왔으며, 부동산은 ‘사적 안전망’의 역할로 우리를 어떻게 지배하고 있는가?
- 한국 사회에 팽배한 불평등 문제의 핵심인 ‘연공제’는 어떻게 불평등을 ‘영속화’시키는 제도로 작동하고 있는가? 생애 주기 전체에 걸친, 세대 간의, 세대 내의, 젠더 간의 불평등의 공고화는 해결할 방법이 정녕 없는가?
- 왜 우리는 ‘여전히’ 쌀, 연공제, 시험, 땅(부동산)에 갇혀있고 중독되어 있는가?

수많은 질문을 던지는 책의 흐름을 따라가며 자연스럽게 저자의 논리와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좁게는 나 자신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넓게는 우리 사회의 불평등의 기원과 구조, 작동 기제를 파악하며 나와 내가 속한 사회 시스템 모두를 ‘객관화’하여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코로나 펜데믹에도 흔들리지 않고 부를 쌓아가는 이들과 최소한의 삶의 요건조차 충분히 보장받지 못 하게 된 이들 간 괴리의 심화는 그저 인수공통감염병에 의해서만 비롯된 것이 아니다. 우리의 조상들과 우리의 부모 세대와 우리 세대까지 지배해 온, ‘벼 농사 체제’로부터 비롯된 구식의 관념과 룰은 코로나 펜데믹과 힘을 합쳐 오늘날의 다양한 불평등과 갈등, 소외 현상을 유발 및 심화시키고 있다. 

어른 세대의 교만과 과오로 인한 극심한 환경 문제로 고통받고 고통받을 우리 자식 세대에게는 이 ‘불평등의 기제’만큼은 유산으로 물려주지 않기를. 그리하여 우리의 아이들은 개인의 다양성을 존중받고 개인의 능력과 노력을 정당하게 평가받는 동시에 국가가 제공하는 공적 보험 혜택을 노년까지 충분히 누리는 ‘더 나은 세상’에서 살 수 있길 간절히 바란다. 이를 위한 노력에는 개인과 사회의 강력한 인식 전환과 국가의 적극적인 계획 수립 및 능동적인 대처가 모두 해당될 것이다. 이 노력의 의지를 모두 함께 다질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서 써내려 갔을 저자의 글이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최대한 많은 곳에서 읽히길 바란다. 우리 모두의 역할이, 우리 모두의 책임이 이 책에 담겨져 있다.

책을 다 읽은 어제 오후, 길을 지나가다가 노인 및 한부모 수급권자를 대상으로 한 생계급여 ‘부양 의무자 기준’이 폐지된다는 내용의 현수막을 발견했다. ‘복지 체제 또한 씨족과 가족 단위로 발달한’(p.257) 한국의 가족 중심 복지 체제는 병 들고 노쇠할 때 국가의 복지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자식과 친척을 ‘안전망’으로 삼아온 벼농사 공동 생산 시스템의 유물과도 같다. 부양 능력이 있는 가족이 있더라도 (고소득, 고재산 제외) 국가의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된 위와 같은 변화는 선별복지 국가에서 보편적 복지 국가로 나아가는 하나의 발걸음이 될 것이다. (참고로 내년부터는 전체 가구를 대상으로 생계급여 부양 의무자 기준이 폐지된다고 한다.)

* 이 리뷰는 문학과지성사 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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