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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볕 내리는 날
  • 톰 아저씨의 오두막 1 (무선)
  • 해리엣 비처 스토
  • 12,600원 (10%700)
  • 2011-02-25
  • : 1,267

살면서 보면 대체로 절충, 타협이 가장 좋은 경우가 많지만,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어야 하는 것이 있는 법. 노예제가 그렇다. 읽으면서 여러 아쉬운 점도 느꼈지만, 어떤 부분은 19세기 중반이란 시대를 감안하고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통찰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점들이다.


노예제와 관련해 '북부=선(善)'은 편견이다. 북부 백인들 역시 흑인들을 혐오하고 싫어했다. 그들은 흑인들이 학대받는 것은 싫어하지만 그렇다고 흑인들을 가까이 두려고 하지 않는다. (1권, p.319)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을 해고하여 굶어 죽게 할 수 있다. 아이가 다른 데로 팔려가는 것과 아이가 집에 있으면서 굶어 죽는 것, 무엇이 더 나쁜가. (중략) 한 인간 집단이 자신의 이익과 발전을 위해 다른 인간 집단을 사용한다는 것. 그게 노예제의 본질이다. (2권, p.32~33)


괴물 같은 노예제에 대항해 싸우고, 여차하면 그 싸움에서 자신을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많은 지식인들과 기독교인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의 냉담한 모습, 사회적 죄악에 대한 인식의 결여는 경악할 수준이었다. (2권, p.182)


악랄한 노예주가 아닌, 오히려 '선량한' 노예주가 노예제를 지탱한다는 역설. "관대한 농장주들이 아예 없다면 이 악랄한 노예제는 단 한 시간도 못 버틴다." (2권, p.229)


노예도 폭군일 될 기회를 얻으면 그렇게 된다. 농장주는 노예들을 서로 반복하게 만들어 지배했다. (2권, p.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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