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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hkdqkr0414님의 서재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 윤동주
  • 6,120원 (10%340)
  • 2003-09-20
  • : 4,306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만한, 아니 적어도 싫어하기는 힘든 시인 윤동주(1917.12.30~1945.2.16). 나 또한 그를 좋아한다. 이 감정은 내 개인사하고도 맞물려 피어오르는 것이라 쉽게 퇴색되지 않는 것이다. 그중 하나.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정병욱의 수필 <잊지 못할 윤동주>를 읽고 크게 감명 받았다. 정병욱은 시인이 독서를 폭넓고 깊게 하면서도, 좀처럼 읽는 책에 줄은 치지 않았다고 기억하고 있다. 일종의 ‘결벽성’이 있었던 것이다. 시인을 닮고 싶은 마음에 나도 그 뒤로 한참 동안 읽는 책에 줄을 긋지 않았다.

  또 하나. 고 1 때 담임선생님이 그 글에 실린 윤동주 사진과 묘하게 비슷했다. 핏기 없지만 눈만은 형형했다. 그래서 좋아했다. 우연히도 담임선생님 과목이 또 국어였다. 자연스럽게 문학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그런데 시험을 보는데 문제가 생겼다. 문제는 윤동주 시인의 유고시집 제목을 쓰라는 것. 나는 자신 있게 썼지만 실수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라고 쓸 것을, <하늘과 바람과 별과 寺>라고 쓴 것이다. 선생님은 시험이 끝난 후 나를 조용히 부르셨다. 왜 그랬니? 그냥 한글로 쓰지. 나는 부끄러웠다. 다른 애들과 좀 달라 보이고 싶었다고, 그래서 선생님 눈에 들고 싶었다고, 차마 말하지 못했다. 답은 알고 있는 것 같으니 맞은 걸로 해줄게. 나가봐. 나는 정말 부끄러웠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별 헤는 밤>, <자화상>, <쉽게 씌어진 시> 등 그의 시집에는 명편들이 많지만, 하나만 고르라면 역시 <서시>이다. 이 시야말로 윤동주의 삶과 시 세계의 ‘序詩’이기 때문이다. 서시란 무엇인가. 시작이요 끝이다. 시인이 세운 최초의 뜻이자 독자에게 처음 건네는 인사말이며 결국엔 스스로 다시 되돌아가야 하는 종착역이다. 그야말로 ‘一以貫之’인 것이다.

  그렇다면 윤동주는 여기서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화자의 시선을 따라가 보면 조금이나마 그 뜻을 엿볼 수 있지 않을까. 화자의 눈은 하늘을 향해 있다. 그러면서 자신의 내면을 비춰보고 있다. 깨끗한 하늘에 비해 내 마음에는 얼마나 얼룩이 많은지. 잎새에 이는 작은 바람에도 나는 또 얼마나 괴로워했는지. 그의 시선은 이제 땅에 내려와 앉는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죽고, 죽을 때는 가장 낮아진다. 평생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조차, 죽음은 땅에서 맞는다(페루가 아니라). 시인은 그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다고, 그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길이라고 천명한다. 그리고 시인은 오늘밤에도 괴로울 것이다. 별이 바람에 스치우므로.

  평생, 그래봐야 30년도 채 안 되는 삶 동안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혔을 시인 앞에서 나는 부끄럽다. 이 시 앞에서 언제나 숙연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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