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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작품이다. 역시 한강작가님은 최고다.

그를 가장 자극했던 것은 호기심이었다. 그 여자가 왜 그랬을까. 왜 미쳤을까. 미친 게 아니라면 왜 옷을 벗었을까.- P50
그러나 그보다 더욱 명윤을 괴롭혔던 호기심은 그녀의 불가해한 침묵에 관한 것이었다. 그 침묵. 무수한 말과 형상들로 가득찬 듯한 침묵 속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 인영의 말대로 아무 기억도 들어 있지 않은 것일까.- P50
그는 어느 때보다 직접적인 죽음의 유혹을 느끼고 있었다. 약을 먹거나 기스를 늘어놓는 식의 방법을 택할 마음은 없었다. 만일 한 다면 깨끗하게 뛰어내린 생각이었다. 가장 확실하게. 준비과정도. 구조될 염려도 없이 몇 초면 끝나는 것이다. 그러나 몇 초면 끝난다는 바로 그 생각으로 그는 하루하루를 버텨같 수 있었는지 모른다.- P55
그리고 화요일 아침 그 버려진 개 대신 현관 앞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던 것은 의선이었다. 의선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은그 늙은 개만큼이나 더러웠다. 그녀는 알몸 위로 나은 남자용 트렌치코트만을 허술하게 여며 입고 있있다.- P79
어디까지 가시죠? 나는 여기서 내리는데요. 선반에 울려놓았년 가방을 내리며 내가 물었을 때 의선은 대답 했다...사실은 저는 갈 곳이 없어요...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나에게 의선은 다시 한번 예의 어럼풋한 웃음을 지어 보였을 뿐이었다. 그때 니는 두고두고 스스로 도 이해할 수 없었던 행동을 했다. 그럼 나하고 같이 갈레요? 라고 나도 모르게 물은 것이다.- P88
그때 갑작스럽게 아내가 미치도록 그리위진 것은 무슨 까닭이었까. 단 한 장의 필름도 인화지도 남지 않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장이 깨달은 것은 아내를 완전히 잃있디는 것이었다. 모든 것을 잃었으므로 아내 역시 잃었다는 것을 뒤늦게 시인하게 된 것일까. 아니면 무엇인가를 잃는다는 것이 얼마나 사무치는 일인가를 절실히 깨달았기 때문에, 아내를 다시 불 수 없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그제야 이해하게 되었던 것일까.- P123
만일 명윤이 조금이라도 미래에 대하여 생각하는 남자였다면 의선과 같은 여자에게 빠질 수 없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명윤에게는 앞날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있다. 현재의 일 분 일 초가 영원과도 같이 끝나지 않는다고 느껴졌을 때 그는 의선을 만났다. - P174
의선의 행방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잡았다든가, 이 눈 내리는 낯선 도시에서 곧 의선을 찾아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들지 않았다. 현실은 영화 따위외는 다르다. 그렇듯 쉽게, 극적으로 의선을 찾아내는 일 따위는 일어날 성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나의 냉정한 판단인지, 아니면 마음 한켠에 숨어 있는 은밀한 희망인지는 확실치 않았다. 명윤의 말대로 나는 지독히 차가운 인간인지도 몰랐다. 어져면 내가 원하는 것은 의선을 찾지 못하는 것이었는지도 몰랐다.- P237
깊은 땅속, 암반들이 뒤틀리거나 쪼개어져서 생긴 좁다란 틈을 따라기어다니며 사는 짐승이랍니다. 흩어져 있는 놈들을 헤아려 보자면 수천 마리나 되지만 사방이 두꺼운 바위에 막혀있는 탓에 한번도 자신들의 종족을 만난적이 없기 때문에 저마다 자신을 외톨돌이로 여긴다지요.- P243
무엇인가를 갈망하는 것을 멈출 때 비로소 평화를 얻게 된다는 것을 나는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다. - P321
그 무렵부터였을 것이다. 나는 누군가를 처음 만날 때면 이사람은 튜브를 던져 줄 수 있는 사람인가를 생각했다. 그것은 쉽게 사람을 환멸하게 만드는 생각이었다, 결코 타인에게 튜브를 던지지 못할 사람도 있었고, 던져야 할지 말아야 할지의 경계에서 미쳐버릴 것 같은 사람도 있었으며, 아무런 생각 없이 던져주고 말 사람도 있었다. 튜브를 거머쥔 꿈속의 내 모습이 스스로를 환멸하고 증오하게 만들었다.- P423
나는 누구도 사랑할 수 없는 종류의 사람이었다. 내가 사랑할 수 있는 것은 나 자신 뿐이었다. 그것을 똑똑히 알고 있는 바에야, 내 배반을 진작부터 명징하게 점치고 있는 바에야. 누구도 회생시키지 않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 P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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