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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별
- 한강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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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 - 2018-10-19
: 7,918
N25051
"고통이 없다면 두려움도 없지."
작별이라는 단어거 이렇게 슬픈 건지 몰랐다. 사람과 사람 사이는 영원할 수 없다. 문학이나 노래 등 예술에서 영원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 건 그렇게 하고 싶지만 그게 불가능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결국 어떻게든 헤어지게 되어 있다. 그래서 만남과 작별의 순간들이 더욱 소중한 것이다.
"난처한 일이 그녀에게 생겼다. 벤치에 않아 깜박 잠들었다가 깨어났는데, 그녀의 몸이 눈사람이 되어 있었다." 로 한강작가님의 단편 <작별>은 시작한다. 왜 하필 눈사람일까? 작가님께서 <흰>이라는 소설에서 보여준 것 처럼 '흰색'인 '눈'이 순수하고 연약하며 죽음을 상징하고, '눈사람'은 겨울이 지나면 녹아서 없어질 수 밖에 없는 사물이다. 그렇다면 '눈+사람'은 이런 흰색의 특성을 보여주는 인간의 죽음을 말하려고 했던걸까?
[이게 혹시 마지막인가. 그녀는 문득 의문했고, 살아오는 동안 두어 차례 같은 의문을 가졌던 순간들을 기억했다. 그때마다 짐작이 비껴가곤 했는데, 기어이 오늘인가.] P.17
연인을 기다리다가 깨어나 보니 눈사람으로 변한 '그녀', 그리고 그런 나의 이야기를 듣고 연인 '현수'는 처음에는 농담인 줄 알았지만 이윽고 그녀를 만나고 나서 진짜임을 안다. 그는 그녀에게 짧게 입을 맞추지만 그녀는 그녀의 입술과 혀가 조금 녹는걸 알아차리고 뒤로 물러선다. 그녀는 죽음을 예감한다. 그리고 주변사람에게 작별을 준비한다.
[어느 쪽이든 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전까지 없었던 무엇인가가 두 사람의 사이에 생겨난 이유를. 보이지 않는 길고 가느다란 실 같은 것이 그들을 연결하는 실체로서 존재하게 되고, 그 실의 진동이 출발하고 도착하는 투명한 접지가 몸 어딘가에 더듬이처럼 생겨난 까닭을.] P.30
그녀는 그를 잠시 내버려두고 아들 '윤'을 만나러간다. 남편과 이혼하고 혼자서 십년째 키워온 아들은 눈사람으로 변한 엄마를 보고 놀라면서 어떻게든 그녀를 되돌리기 위한, 그녀를 살리기 위한 방법을 떠올려본다. 경찰에 신고해볼까? 병원에 가볼까? 냉동고에 들어가볼까? 남극이나 북극으로 가볼까? 당장 내일 날이 풀리면 엄마가 녹아버리는건 아닌지 아들은 걱정하고, 그녀는 그런 아들을 안아준다. 그러면서 가슴과 눈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새어 나오는걸 느낀다.
추운 겨울이기 때문에 그녀는 아들을 다시 집으로 들여보낸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전화를 해서 안부를 묻고, 과거 스쳐지나간 사람들을 떠올린다. 직장에서의 차별, 오빠의 괴롭힘과 자살, 남편과의 이별. 괴로웠던 지난 과거를 이해하려고 노력해 보지만 아직도 알 수 없는 것들은 있었다. 어디까지가 한계인지, 얼마나 사랑해야 우리가 인간인건지.
[그녀는 어두운 냇물을 내러다보있다. 벌거벗은 버드나무들이 희끗한 눈발을 머리에 인 채 캄캄한 수면을 항해 몸을 수그리고 있었다. 저 검은 불속 어딘가에 여름의 잉어들이 잠들어 있을 것이다. 그들이 은회색 비늘을 빛내며 수면으로 올라올 아열대의 여름으로 그녀는 들어서지 못할 것이다. 어째서인지 그녀 자신 역시 그곳으로 걸어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피와 살과 내장과 근육이 있는 몸을 다시 갖고 싶지 않았다.] P.46
그녀는 조금씩 녹아 사라지고, 그런 그녀의 옆에 그가 나를 잠자코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마지막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그에게 떠나라고 한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당연하다. 그는 그녀를 사랑하니까 마지막을 지키고 싶어했다. 아들에게 전화가 온다. 그녀는 아들에게 사랑한다는 단 한마디의 말을 남긴다. 이후 물기 많은 눈이 내리기 시작하고 그녀는 녹아내리기 시작한다. 완전히 소멸하지만 마지막 따뜻함을 느낀다. 그럼에도 남기고 간 것들에 대한 아쉬운 마음에 뒤돌아본다.
[더 이상 기회가 없을 수 있으므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순간에 하고 싶어 하는 말, 모든 군더더기를 덜어낸 뒤 남는 한마디 말을 그녀는 했다. 날카로운 것에 움뚝 찔린 것 같은 말투로 아이가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나도 사랑해.] P.53
헤어짐을 나타내는 단어는 아주 많다. 작별도 있고, 이별도 있고, 고별도 있고, 결별도 있고, 사별도 있다. 이별이나 결별이 다시 만남을 기약하지 않는, 주로 연인 사이에서 쓰이는 단어라면, 작별은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는 단어라고 한다. 사실 죽어서 만날 수 없는 헤어짐이라면 고별이나 사별이 더 맞을텐데, 한강 작가님의 이 작품은 <작별>이 너무 잘 어울린다. 죽음은 끝이 아니다. 육체적으로 마주할 수 없어서 슬프긴 하지만 기억속에서 언제든 만날 수 있으니까, 언젠가는 다른 세상에서 만날테니까 말이다.
[나직이 그녀가 중얼거렸다. 그가 얼굴을 돌려 그녀를 멍하게 마주보았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두 사람의 입술이 만났다. 그가 차가움을 견디는 동안, 그녀는 자신의 입술과 혀가 녹는 것을 견뎠다. 그것이 서로를 우리라고 부를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이라는 것을 그녀는 알았다.]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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