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빌라는 작가들이 머물며 집필을 하는 레지던시 입니다. 그곳에서 주인공 효연은 소은의 아버지인 또 다른 효연과 함께 머문 시간이 있습니다. 머물렀다고 단순히 표현하기는 좀 그렇지만 우선 그렇게 말해 봅니다.
주인공 효연은 논픽션 작가이면서 또다른 효연의 딸인 소은과 함께 여행하면서 또다른 효연의 삶에 대해서 알아 갑니다. 주인공 효연이 그런 행동을 하는 동기는 사실 정확히 알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인간이 어떤 행동을 할 때 그 동기를 늘 정확하게는 말할 수 없듯이 주인공 효연이 소은과 함께 여행하는 것도 약간은 특수한 상황입니다.
소설을 통해 작가들의 삶에 대해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지속적으로 돈이 되는 '연금'같은 책의 존재. 어쩌면 모든 작가가 원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 연금을 가진 작가는 불행한 삶을 살다 갑니다. 그건 모든 연금 같은 작품을 가진 작가가 불행한 삶을 살 것이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다만 '소설 속 상황은 현실에 있을 법하다.'는 생각은 해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작가들이 어떤 동기로 책을 집필하게 되는 지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세간의 인정만을 위해서 글을 쓰는 것도 아닙니다. 그들도 여러 가지 상황. 그러니까 현실 논리. 현실 원칙에 의해서도 글을 쓰게 됩니다. 또 다른 효연도 그것에 의해서 연금과 같은 책을 집필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주인공 효연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녀는 성정체성에 대해서 약간의 혼란 같은 것을 가지고 사는 것 같은데 자신의 직업인 글쓰기에서도 그 점이 조금씩 노출됩니다. 물론 자신의 정체성 때문에 책을 집필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정체성과 더불어 살면서 겪은 많은 사건들, 상황들이 그녀가 글을 쓰게 만들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 소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됩니다. 이제 20살이 되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사는지는 사실 알기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제가 20살 때는 대학에 가는 것만이 정답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세상은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그녀는 곧 일을 하러 떠나는 상황인데 교정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치과에 지불하는 비용이 부담이 되기도 하지만 일을 하기 위해 3개월 이상 동안 치과에 방문하지 않는 선택을 하는 것. 그렇게 되면 진료에 필요한 시간과 돈이 늘어날 수도 있지만 지금 눈앞에 놓인 새로운 세상을 탐험할 기회를 놓치지 않는 선택을 하는 것도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주인공 효연과 소은은 자신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은 사람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표면적으로는 또 다른 효연의 발자취를 쫓는 것이지만 그 길을 통해 알게 되는 점은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서로 잘 통할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이 같이 여행하는 모습은 여러 가지 장면에서 그때그때 재미를 줍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상황들을 통해서 자신을 더 많이 알게 되는 것은 아닐지 생각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은 '돈을 많이 벌어 놓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소설 속에서는 정말로 '돈을 많이 벌어 놓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도 나옵니다. 돈을 많이 벌어 놓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그 '하고 싶은 일'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기존에 남성들 혹은 기득권 세대가 퍼뜨려 놓은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라는 생각이 사실은 모순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하고 싶은 일이라는 것은 '언제나 현실을 염두 하면서 선택해야 하고 싶은 일이 된다.'는 점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렇게 하는 선택들은 거창해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하고 싶은 일입니다. 현실을 바라보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라 믿었던 것들을 하던 또 다른 효연의 삶을 통해서 그 점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주인공 효연은 언제나 '진실을 알고 싶어.'하는 태도를 지닌 사람인 것 같습니다. 사람들의 말과 행동은 그 순간이 지나면 사라집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어떤 사람의 마음속에 남습니다. 이해되지 않는 상황도 많고 잘못 이해한 상황도 많습니다. '무던하게 넘어간다.'라는 말은 왠지 좋아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마음속에 남은 것들은 어떤 형태로든 삶에 드러나게 됩니다. 그 남은 것들을 해소하고 다루는 게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해 해 보게 됩니다.
좋은 글 읽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은 그런 마음 없으세요? 연금 같은 책, 노후보장 되는 책 딱 한 권만 써놓고 진짜로 하고 싶은, 돈 안 되는 작업들만 하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 안 해봤어요? 제 친구 엄마는 서점을 하는데 문제집 팔아서 돈 벌지만 꾸준히 아무도 안 사 가는 정신분석 이론서를 입고해요. 그러니까 선생님도 그런 거 하나 만들어 둘 생각 없으세요?- P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