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가 궁금하지 않은 소설이 탄생했습니다.여태까지의 박민정의 소설은 '어떤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느낌이 '은은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면 독자는 '아, 소설가가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이런 문제를 이렇게 소설화 시킬 수 있구나!'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동의하지 않을 수 있지만 저의 관점으로는 그랬습니다.
사실 위에서 말한 저의 그런 느낌이란 것은 혹시 이 소설을 읽으면서 생겨났을 수 있습니다. 이 소설을 읽는 순간 여태까지의 박민정 소설은 독자에게 ''어떤 문제를 다루려고 한다.'의 느낌을 주었을 수 있다.'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이 소설에서는 '어떤 문제를 다루려고 한다.'의 느낌이 전혀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령 박민정의 장편 소설들만 생각해 본다면 '미스 플라이트'에서는 '자살한 승무원을 둘러싼 그 환경'들, '백년해로외전'에서는 '가족과 입양 그리고 구조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려고 한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소설은 그런 느낌이 없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와 너무 가까운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문제라는 것은 '누구나 인지하고 있지만, 또 그것에 대해 관심이 있지만, 답을 알지 못하는 유형의 것'입니다. 박민정 소설가는 이번 소설에서 그 답을 제시합니다. 소설의 모든 장면은 하나의 답을 증명하기 위해 꼭 필요한 요소들처럼 느껴집니다.
정말 재미있습니다. 누구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고 많은 지점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Netflix 시리즈로 만들어지면 오징어게임을 이을 K-컨텐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민정 소설가의 소설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박민정 소설가의 소설은 늘 소설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소설을 썼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편이었지만 이 소설은 소설가는 사라지고 온전히 이야기만 남는 소설이라고 느껴졌습니다. 매번의 소설에서 완전한 스타일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소설은 현재 세상에 많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일독을, 이독을, 삼독을 권합니다.
그들이 보이고자 하는 모습에 그들이 원하는 것도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누군가 그랬다. 진실은 그가 할 수 있는 것이고 허위는 그가 원하는 것이라고. 나는 그가 할 수 있는 것과 그가 원하는 것 모두 그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P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