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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과 헌신이 반드시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이전 번역본을 사고 묵혀두며 주해본을 살까말까 고민했다. 원문을 보니 이건 아닌 듯. 첫페이지부터 그렇다. 


isthmus(지협)을 수곡으로, this side를 '차안'으로 번역하는 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나? 번역에서 한자어를 과하게 사용할 수도 있다. 리듬감을 고려한다든지 할 때 그렇다. 그런데 이 경우엔 딱히 그 목적을 찾을 수가 없다. 


violer d'amores를 '사랑의 재사(재주있는 사람)'로 번역한 것도 마찬가지. '비올 연주자 + 비올라 다모레(바이올린의 전신)'의 조어다. 사랑의 ~라고 번역하는 거야 그렇다쳐도 재사? 영한 대역본이면 몰라도 이건 아니다.


이 부분만 보자. 


오코네 유천에 의한 톱소야의 암전이 그들 항시 자신들의 감주수를 계속 배가(더블린)하는 동안 조지아 주, 로렌스 군의 능보까지 스스로 과적하지 않았으니: 

nor had topsawyer's rocks by the stream Oconee exaggerated themselse to Laurens County's gorgios while they went doublin their mumper all the time:


톱소여를 발음대로 적은 것, 지명인 더블린을 배가(더블린)으로 번역한 것 등은 이해할만 하다. 


톱질꾼의 우두머리(?)라는 뜻에 톰 소여 말장난이 더해졌으니 발음대로 적고 괄호처리로 뜻을 넣은 것은 이해가 간다. 또, 실제 지명 더블린(미국)에 작가인 조이스가 배가의 의미도 넣었다고 하니까 그것도 그럴 수 있다. 


그런데 톱소여를 발음대로 적었으면 더블린도 '배가(더블린)'이 아니라 '더블린(배가)'라고 하는 게 일관성이 있지 않을까?


또한 rock는 이 앞의 문장의 'penisolate war'에 함의된 penis에 상응하는 불알이라는 뜻도 담고 있다. 이것도 반영이 안 된 것 같다. 


gorgios는 텐트가 아니라 집에서 사는, 집시가 아닌 사람을 지칭하는 집시 용어다. 이건 반영이 안 됐는데, 오히려 Laurens County's gorgios → 조지아 주, 로렌스 군의 능보(陵堡)가 됐다. 능보는 어디서 나온 걸까? 


mumper를 감주수(단술의 숫자?)라고 번역한 이유는 주석을 보지 못해 모르겠지만, 이 단어엔 일단 가짜 거지라는 뜻이 있다. 그 정도는 반영해주는 게 맞지 않을까? 


무엇보다 이 부분은 표면적으로 미국의 조지아주 로렌스 카운티의 오코니 강이 배경이다. 실제로 있는 지명이다. 이걸 조지아 주, 로렌스 군, 오코네 유천으로 번역하는 건 한자어에 대한 집착이다. 촌스럽기까지 하다.


물론 영어 해설을 봐도 이 문장들을 제대로 번역하는 건 거의 불가능해보인다. 중의적인 표현이 너무 많고 덧붙여야될 배경설명도 너무 많다. 조이스의 의도대로 더듬어가며 읽는 게 맞긴 맞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일관성 없는, 자의적인 한자 선택과 한자어에 대한 집착이 정당화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냥 잘못된 번역이다. 번역은 일차적으로 전달에 목적이 있다. 


개인적인 판단으로, 번역가의 잘못은 크게 1.낭독에의 집착 2.한자어에 대한 집착 3. 일관성 없는 번역 방향으로 볼 수 있다. 이건 출판사의 잘못이기도 하다.


http://finwake.com/1024chapter1/1024finn1.htm


읽히는 책이 되려면 우선 영한 대역으로 하고 이 사이트처럼 책을 구성하는 게 맞을 것이다. 아마 번역가도 내가 이 사이트에서 느꼈던 재미를 마찬가지로 즐겼으리라 생각한다. 한 줄 한 줄 더듬더듬 읽어나가며 상응하는 단어들과 말장난들 등등을 찾아나가는 재미 말이다. 


그걸 혼자 느끼고 독자에겐 괴로움을 선사하는 건 뭔가 어긋난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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