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가 위장에 탈이나면 풀을 먹듯이 병든 인간만이 책을 읽는다.” 강유원 작가의 『책의 세계』에 등장하는 말이다. 오랫동안 독서인들에게 주박처럼 새겨져 있던 말이지만 올해 서울국제도서전에 방문한 16만명이 넘는 참관객들의 (역주행에 성공한 아이돌 같은)생태 눈을 직관하고 나니 이제는 저 문장에 반론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병든 인간’을 ‘고독한 인간’으로 바꿔보면 어떨까? 유선사에서 기획한 『고독 이야기』는 카프카, 카뮈, 헤밍웨이, 체호프, 생텍쥐페리, 울프, 소세키, 다자이 오사무 등 이름만 들어도 퍼스널 컬러가 ‘고독’인 고독길 대선배 작가들의 시, 단편, 에세이를 모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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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매 챕터 앞에는 구성 내용에 페어링한 짧은 시가 한 편씩 실려있다. 1부 <혼자가 되는 법>은 나쓰메 소세키의 <교토에 도착한 저녁>으로 시작한다.
교토역에서부터 시작한 교토의 쓸쓸함, 추위, 굳게 닫힌 문 등등. 소세키 특유의 불평섞인 도시 정밀 분석으로 작품은 시작한다. 그러나 곧 도련님과 산시로가 그랬듯이 이 글의 화자도 따뜻함을 찾아내는데 바로 달달한 단팥죽과 그에 얽힌 추억이다. 이 단편은 춥고 쓸쓸하게 맺어지지만 그럼에도 소세키 작품 속 화자라면 혼란해하면서도 잘 적응할거란 예감이 든다.
2부 <어둠 속의 목소리들>은 <어린 왕자>를 쓴 생텍쥐베리의 에세이 <인간의 대지>로 마무리한다. 학생 때 생텍쥐베리의 우편기 조종사 시절을 배경으로한 <야간비행>을 도서관에서 여러 번 빌려봤는데 이 때부터 고독이 퍼스널 컬러인 작가(ex 카뮈, 카프카, 제발트)를 제법 좋아했던 것 같다. <인간의 대지>는 이번에 처음 접했는데 작가가 사막에서 조난 당했던 일을 바탕으로 쓴 작품이다. 아름다운 석양과 사막의 풍경 묘사, 마을을 낯설어 하는 비행 조종사로서의 작가의 아이덴티티가 강조된다.
(📍스포일러 : 조난당한 두 사람은 죽기 전에 구조되었고 생텍쥐베리는 한참 후에 혼자 비행중 실종된다.)
3부 <고독 이후>는 고독의 대문호 다자이 오사무의 엽편 <기다린다>와 에밀리 브론테의 시 <사방이 어둠으로 잠겨드는 밤>으로 마무리 된다. 두 작품 다 짧은 분량인데도 작가의 특성이 고스란히 담겨서 재밌게 읽었다.
🫶전체적으로 감정을 주제로 고전을 따라간다는 책의 기획 방향이 명료하니 독자로서도 편하게 따라갈 수 있었고 유명한 작가임에도 처음 보는 작품이 많아서 즐거웠다. 특히 <인간의 대지>는 따로 생텍쥐베리 단행본을 장바구니에 담아둘 만큼 마음에 들었다.
🥳또한 오랜만에 나온 유선사 신간을 이 책이 매우 필요한 시기에 만날 수 있어서 무척 행운이었다. 요즘같이 더운 여름 날, 긴 장편을 집중해서 읽기 어려웠는데 매일 밤 한편씩 꺼내 읽기도 좋았고 다시 날이 쌀쌀해질 때에 찾아 읽어도 즐거울 것 같다. 그리고 더위가 사그라질 때엔 같이 출간되었던 <정원 이야기>를 읽어봐야겠다😊
세상은 서서히 죽음을 맞는다. 내게서 빛이 조금씩 사라져간다. 하늘과 땅이 점차 뒤섞인다. 땅은 위로 솟아 증기처럼 퍼져나가는 듯 보인다. - P164